아름다운 수필·詩 308

김명순 詩 가을 벌레소리

가을 벌레소리 -김명순 비 그치고 뭉텅 뭉텅 빠져나간 여름 꽃자리 밤마다 그 아래 가을 벌레가 와서 울었다. 벌레소리 내게 묻는다. 네 마음 씨앗처럼 단단해졌는가. 너는 그 많은 날을 어느 길에 흘렸는가. 내일만을 꿈꾸다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매 순간 아낌없이 살고 있는가. 너는 정령 누구인가. 잠자는 동안에도 마음이 끌리는 오래 전 내 배로 낳은 아이들 어디에 그 자국이 있는가. 나는 정말 한때 젖을 물렸던 어미였던가. 가을 벌레우는 소리 세상을 모두 잠재우고 내 영혼만을 깨운다. 나는 무엇이었을까. 나고 자란 곳도 ,피붙이도 없이 지상에 홀로 억류된 들짐승이 아니었을까. 추워지는 밤 더러운 벽에 기대 잠을 청하던 고아처럼 그 벌레소리 서러워라.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데. 세상과 나는 함께 깨어 있..

황동규 詩 *풍장*

풍장(風葬) 1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거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