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에토벤 선생님

[스크랩]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F단조 op. 57 "열정" & 제7번 D장조 op. 10-3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schubert 2012. 6. 30. 10:57

 

 

 

 

 

 

 

 

 

 

 

 

 

 

Piano Sonata No.23

 

in F minor op.57

 

"Appassionata"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F단조 op. 57 "열정"

 

작곡 연도: 1804~1805년

작곡 장소: Wien

 

출판/판본: 1807년 2월 [소나타 54번]으로 빈의 미술공예사에서 출판됨,

자필악보는 파리 음악원에 보존.

 

헌정, 계기: 브룬스비크 백작(1777~1849)에게 헌정.

 

백작은 음악을 대단히 좋아했고 특히 첼로를 잘 연주했으며

베토벤 음악에 진심으로 심취해 있었음.

백작의 세 딸중 테레제(1775~1861)는 베토벤이 그녀의 초상을

죽을 때까지 몰래 지니고 있을 정도로 사랑하던 여인.

 

초연 연도: 미상

초연 장소: 미상

초연자: 작곡가 자신으로 추정됨.

 

1악장 알레그로 아사이 f단조 12/8박자. 소나타 형식.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D flat 장조 2/4박자. 변주곡 형식.

3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f단조 2/4박자. 소나타 형식.

 

작품 해설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소나타가운데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반면 그 내용이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어서 처음 베토벤의 소나타를

접하는 사람에게 있어 8번이나 14번처럼 빨리 친해질 수 있는 곡도 아니다.

 

이 곡은 연주하기도 무척 어렵다.

이 곡을 칠 때는 건반도 별나게 무겁게 느껴지고(느낌만이 아닌 것 같다)

요구되는 손가락 기교도 상당히 고도의 것이다.

1악장과 3악장의 폭발하는 듯 한 코다는 상당한 팔힘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이 곡이 가지고 있는 불타는 듯한 에너지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정말 고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이 곡을 연주해낼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이 소나타는 훌륭하다.

연주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금욕적일 정도의

마음가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1악장

 

첫머리부터 곡은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피아니시모로 두 옥타브의 간격을 두고 동일한 선율을 제시하는 1주제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 정도이며 처음으로 포르테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Allegro assai(매우 빠르게)라는 악상기호를 가지고 있지만

그다지 빠른 템포라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운명의 동기(빰빰빰 빠암 하는)'가 왼손에 등장하고

가끔씩 폭발하는 포르테와 왼손의 셋잇단음표가 주는

불길한 초조함 속에서 밝은 제 2주제가 서서히 떠오른다.

 

이 주제는 1주제의 관계장조인 A-flat장조이므로

3대 소나타중 유일하게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는셈이다.

이후 복잡한 발전부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재현부가 나타난 후

거대한 코다로 들어간다.

 

음악은 난폭해질 대로 난폭해져서 아르페지오가

건반을 휩쓰는 듯이 지나가고 그야말로 뜨거운 느낌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음악적인 고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고조의 절정에서 음악은 갑자기 사그라들면서

템포를 떨어뜨리고 불길한 느낌의 '운명의 테마'가

고요하게 몇 차례 반복되다가 완전히 음악이 정지한다.

 

그리고 갑작스레 piu allegro(더욱 빠르게),

포르테시모의 '운명의 동기'가 튀어나오고 2주제를

소재로 하여 잠시 진행되다가, 다시 운명의 동기를 소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1주제를 소재로하여 급격히

힘을 떨어뜨리면서 다시 숨막히는 고요 속에 악장을 끝맺는다.

 

피아니시모로 시작하여 피아니시시모로 끝을 맺는다는 놀라운 발상이다.

'차가운 껍질과 뜨거운 알맹이'라고나 할까?

 

2악장

 

2악장은 주제와 변주, 음악의 깊이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단정하게 정돈된 분위기 속에서 엄숙하게 주제가 제시되고

변주를 거듭해 나갈수록 음악은 고조되어 나간다.

 

강약의 대비에 의해 고조되어 나간다는 것 보다

뒤로 갈수록 음악적인 감흥이 넘쳐나는 것이다.

악장의 종결 직전까지 그 흐름을 따라가보면

그 행복감은 정말 참기가 힘들 정도이다.

 

마지막에는 다시 주제가 재현되고, 의사끝맺음(거짓종지)가 있은 다음

갑작스레 격렬한 7도의 아르페지오가 연주되고(이 효과는 정말 압도적이다)

바로 3악장으로 연결된다.

 

3악장

 

3악장은 소나타형식의 커다란 악장이다.

 

앞 악장에서의 격한 화음을 연속해서 두들겨대고 계속 아래로 하강하여

첫 번째 주제를 제시하게 된다.

1주제의 경과부는 상당히 길고 또 비관례적으로 제시부를 반복하지 않는데,

대신 발전부와 재현부를 통째로 반복하게 되어 있다.

이 길다란 반복의 목적은 뒤이어지는 코다의 격렬함을

훨씬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3악장의 코다는 베토벤이 정말 대단한 각오로 만들어낸 격한 악상이다.

베토벤은 이 코다의 효과를 위해 3악장의 첫머리 템포를

Allegro ma non tanto(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로 지시했는데,

그것은 Presto의 코다가 주는 효과를 한껏 살리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코다의 도입은 무곡풍의 완전히 새로운 소재로,

그리고 이어지는 종결은 제 1주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밀어붙이는 압도적인 효과를 가진 음악이다.

 

 

Piano Sonata No. 7

in D major op. 10-3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7번 D장조 op. 10-3


 

 개요 

 
작품 10에 속하는 3곡 중에는 이 곡만이 4악장을 지닌 가장 뛰어난 소나타로 꼽힌다.
제 3악장에는 미뉴엣도 부활시키고 있고 제 2악장에는 베토벤 자신의 슬픈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전하여 지나 여기에 표현된 비장한 감정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즉,라르고 에메스트는 (라르고이며 근심에 짓눌린 감정)

"이 말 속에는 명암과 여러배색으로 쌓인 슬픔이 그림속에 그려져 있다"라고

신들러(베토벤의 무급비서)에게 베토벤이 말하였다고 한다.


한편 이 곡에는 후년의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개성적인 면이 어떠한 작품에서보다

원숙한 기법으로 표현되고 있고 지금까지의 소나타보다 심각한 그의 정신적 움직임을

주제나 동기에 교묘하게 반영시키고 있어'생활체험'에서 생긴 음악이라 볼 수 있다.
[1801년에서 3년동안]이란 편지에 쓴대로 귓병이 시작된 때의 작품]

그 증거로는 다음 8번 소나타에 베토벤 자신이

(비창)이라는 말을 쓰는 결과를 초래한 것을 보아도 이해가 되리라 본다.
그러므로 숙명적인 귓병이 겹치는 불행을 한 몸에 지고

모든 희망과 행복과는 인연이 먼 환경 속에서

고통 중 기쁨을 찾아낸 자에게만 부여될 수 있는

정신의 승화가 작품 전체에 넘쳐 흐르고 있다.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 정신력은 어떤때는 폭풍우로

어떤때는 신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평화에의 염원으로

또는 아름다운 서정으로 바뀌어 우리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증정 

Op10 1~3곡이 모두 브라운 백작부인에게 증정되어있으며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9번>3개의 현악3중주,뒤에 쓴 작품22의 Bb장조는

그녀의 남편 브라운백작에게 증정되는데 이 때

"나의 가장 우수한 작품을 나의 최고 애호자에게 드림"이라 쓰고 있다.
부부가 모두 베토벤과는 깊은 친교가 있었고 그의 음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고

바이올린연주에서는 베토벤을 능가했으며 비엔나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어

로테스 하우스에 저택을 장만한 그의집에서 같이 지낸일도 있다

출판 

1798년 9월 중순 비엔나의 에델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동년 7월7일 비엔나 짜이퉁지에 신간 예고를 냈고 예약을 받기 시작,

9월 26일 에는 신간 광고를 내고 있다.


제 1악장

 

D장조 Presto 소나타 형식
소나타 형식으로 쓰여 있다고는 하지만 구조는 지금까지 써온 곡에 비하면

복잡하고도 면밀하게 선보인다.

제시부 (1~124마디)

처음부터 보여주는 4개의 음표로 구성된 기본 동기가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진행한다.

제 1주제 (1~22마디 전반)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암시적인 동기로 시작되며

템포에 있어서도 제1악장은 빠른 것이 사실이나 대개가 Allegro 무엇 무엇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그마치 프레스터로 끝악장과 맞먹는 속도표시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주제자체는 10마디로 구성되며 전반은 상행하는 동기이어서

후반악절은 하행적이며 이 5마디의 동기도 첫동기에서 유도된 것으로

전자는 유니즌으로 시작하다 두 손에 의한 옥타브로 변하는데

후자는 6의 화음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하는 악절에서는 변형하여 분산 6도를 사용하는

무의미한 음형이 뒤따르고 있다. 그리고 하행하는 악절은

이 악장에서 가끔 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10마디의 f로 시작하는 분산 6도의 음진행도

변주된 경과구가 되며 접속적 에피소드로 이루어진다.

16마디부터는 제 1주제의 4마디를 변주형으로 변형시켜

ff로 고조시킨 경과구가 순서가 바뀌어 등장한 것이 된다.
언뜻 보기에 10마디에서 22마디는 변화가 특이하여

순서도 바뀌어 학습자들에게는 악상을 구명하기 힘든 것으로 되어 있다.

제 2주제 20마디의 후반부터 등장하는 b단조 부분은 뚜렷한 선율로

무언가 쓸쓸한 느낌을 지닌 (A)를 가지고 등장하지만

에피소드 또는 간주적 주제로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뒤 53마디에 등장하는 정규의 제2주제(B)가 있어

이 두 개를 합쳐 제 2주제는 구성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나

이 b단조 부분은 역시 간주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제 2주제or Episode 이 부분을 제 2주제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이 주제가 재현부에서 5도 아래인 e단조로 조옮김 된다는

논리적 근거 때문에 정규의 제 2주제로 보지 않지만

성격상으로는 뚜렷한 제 2주제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해두는 바이다.
이 부분 8마디는 응답형으로 두 번 반복되고 경과부에 들어가 여러 가지조로 조바꿈된다.

 

경과부에 들어간 뒤 38마디와 39마디는 주제 4마디를 축소한 형태이고

그 뒤 41마디에서 소프라노의 온음표 진행은 아래음 f,e,d,c4마디도

주제동기의 축소형.

이렇게 하여 고조의 기분을 보여준 뒤 53마디에서

또 새로운 주제 B가 등장한다.

이 주제는 D장조의 딸림조인 A장조로 선보이며

앞서 등장한 b단조의 에피소드와 기분상으로는 공통성을 느끼게 한다.

이b단조와 A장조의 관계는 재현부에서 e단조와 D장조의 관계로 변해 등장하게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이론적으로는

이 주제만 정규의 제 2주제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 주제도 60마디부터 a단조로 바뀌어 반복되고 60마디부터는

온쉼표 뒤 제 1동기를 저성부에 등장시켜 위성부에 선율선을 그리며

제 2주제의 부 주제격으로 교묘한 전개를 꾀하여 94마디까지 진행한 뒤 종결로 들어간다.

종결부의 선율도 주요주제에서 유도된 것으로 오른손의 아티클레이션이다.
93마디 저음상의ABC # D음의 상행선율이 이를 답변해 주며

이는 주동기를 역행시킨 4음이 된다.

105마디부터 2분음표로 짜여진 침착한 화음을 8마디 들려주고 코데타로 들어간다.

 코데타는 113마디 후반부터 10마디로 이 부분도 제 2의 전개부라 볼 수 있는

수법을 보여주고 형태로는 새로운 기교를 쓴 부분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다시 처음부터 반복된다.

전개부 (125~183마디)

전개부는 제시부의 코데타를 연장시킨 부분이 4마디 예비로 등장하고

pp에서 제 1주제가 그대로 4마디 등장하여 ff로 표현되는 형태로 시작된다.
이 수법은 유동적인 유도법이다. 뒤를 이어 133마디부터는 Bb장조로 극히 활발한

전개가 펼쳐지나 수법은 다분이 다음 <비창>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이 들며

트레몰로가 상하로 대화하는 듯한 표현은 때때로 도약하여

작품 2-2의 1악장의 전개부와 흡사하여 급격한 감정이 감돌고 있다.

141마디부터 주제는 아래 성부에 전개되며 전개부가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고

단순한 것은 앞의 제시부에 너무 무게를 둔 탓이라 본다.

재현부 (184~274마디)

재현부에서는 제 1주제가 으뜸조 그대로인 D장조로 재현,

197마디에서는 경ㅇ과부의 접속 에피소드 후반에 등장하는

상행적 제 1주제의 전반부가 생략되고 제 2주제 부분의 재현을 유도하기 위한

경과부로 음역이 확대되어 선보이고 205마디부터 5도 관계인 e단조로

(제시부에서는 b단조임) 등 장음계현 그대로 재현된다.

225마디에서 제시부부다는 온음표 수가 단축된 형태에서 제 3주제의 재현부로 몰고 간다.
제 3주제의 재현부도 5도 관계인 D장조로 (제시부에서는 A장조)바뀔뿐

원형을 따라 그대로 재현된다.

코다 (274~344마디)

제시부에서 2분음표로 등장한 뒤부터 코데타로 취급했으나

여기서는 그 앞인 제 1주제의 등장부분,274마디 후반부터 잡고

제시부의 코데카를 확대한 형태로 하여 38마디를 더 첨가한 악절로 구성

제 1악장은 막을 내린다.
이 중 322마디에서는 제 1주제를 위성부에서

제대로 회상시키고 있는데 유의하기 바란다.

 

 

 

...About Beethoven

 

 독일 작곡가. 본 출생. 최성기의 고전파에서 초기낭만파에의 전환 기에 56세의 생애를 보낸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양식을 최고 정상까지 높이는 동시에 19세기 음악가들의 우상적 존재가 되었으며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독일 작곡가. 본 출생. 최성기의 고전파에서 초기낭만파에의 전환기에 56세의 생애를 보낸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양식을 최고 정상까지 높이는 동시에 19세기 음악가들의 우상적 존재가 되었으며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생애〕

그의 조부 루트비히는 플랑드르에서 이주한 본의 궁정악장이었고, 아버지 요한은 본의 궁정가수였으며, 어머니 마크달레나는 궁정요리장의 딸이며 궁정의 심부름꾼으로 미망인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1770년 베토벤이 태어났다. 그의 세례일은 70년 12월 17일로 되어 있으나 명확한 출생일은 알 수 없다. 플랑드르의 중후한 기질, 독일의 엄격한 논리, 라인지방의 희노애락이 심한 감정, 그리고 제 2 의 고향이 되는 빈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베토벤음악의 배경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배웠고 7세 때 연주회에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여 풍부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소년시절 본에서 아버지를 비롯하여 몇 사람의 음악가로부터 개인교수를 받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10세 때부터 베토벤을 가르친 C.G. 네페였다. 제 2 의 모차르트가 될 것이라고 그의 재능을 절찬한 네페는 J.S. 바흐와 C.P.E. 바흐의 작품을 가르쳤다. 11세 때 최초의 작품을 출판한 베토벤은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가로서도 활동하였다. 16세 때 그는 모차르트를 동경하여 빈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급병 소식을 듣고 본으로 되돌아왔다. 어머니의 죽음은 주벽이 심해진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들었고, 베토벤에게 집안 생계를 맡기는 결과가 되었다. 실의에 찬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브로이닝가(家)의 따뜻한 분위기였으며 그 집 딸 엘레오노라는 베토벤의 첫 애인이 된다. 그의 후원자가 되는 발트슈타인백작도 87년에 본으로 부임하여 물심양면으로 베토벤을 도와준다. 92년 본을 방문한 F.J. 하이든에게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베토벤은 하이든의 제자가 되려고 21세 때 빈으로 떠난다. 92년 빈에 도착하여 하이든·J. 센크·J.G. 알브레히츠베르거 밑에서 먼저 작곡기법을 배우는 동시에 피아노의 명수로서 귀족들 사이에서 점차 높은 평판을 얻게 된다.

빈 생활 3년째에 그는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자작 피아노협주곡 제 2 번을 연주하여 데뷔하였고, 작곡가로서는 《피아노 3중주곡집》을 출판하였다. 96년에는 보헤미아와 독일에 연주여행을 하는 등, 연주·작곡 양면에서 순조롭게 성장하여 1800년에는 그 자신의 연주회를 빈에서 열고 교향곡 제 1 번을 초연하였다. 이듬해에는 J. 구이차르디와 사랑에 빠져 피아노소나타 《월광》을 작곡하였고, 27세 무렵부터 느꼈던 난청이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귓병으로 악화되자, 1802년에는 자살까지 결심하였다. 그러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계기로 교향곡 제 3 번 《영웅》, 교향곡 제 5 번 《운명》, 오페라 《피델리오》 등 수많은 걸작을 계속 작곡하게 되었다. 1808년에 베스트팔렌국왕이 카셀궁전에서 악장으로 초빙하자 좋은 경제적 조건 때문에 그는 카셀로 가려는 결심을 굳힌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재능을 존경하는 루돌프대공을 비롯한 빈의 세 귀족들은 연금을 서로 출자하여 베토벤을 평생 오스트리아에 머물러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1809년부터 12년까지의 시기에는 피아노협주곡 제 5 번 《황제》, 피아노 3중주곡 《대공》, 교향곡 제 7 번과 제 8 번 등 다채로운 작품을 작곡하였다. 13년부터 16년까지는 사랑편지 <내 불멸의 애인이여>의 상대방인 브렌타노부인과의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그의 자주적 작곡활동은 침체하였으나, 17년에는 《전쟁교향곡》과 오페라 《피델리오》의 상연이 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8년부터 청각을 거의 잃은 그는 필담(筆談)에 의해 생활해 가면서도 피아노 소나타 《하머클라비어》를 비롯해 후기의 걸작군을 창작해 갔다. 베토벤음악의 총결산인 교향곡 제 9 번 《합창》은 24년 5월 7일 빈의 쾰른트나투르극장에서 8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4명의 독창자, 약 100명의 합창에 의해 초연되었다. 26년 12월부터 간경변 때문에 수술을 되풀이했으나, 27년 3월 23일에는 죽음을 깨닫고 유서를 썼다. 3월 26일 그는 56세의 나이로 생애를 끝마쳤다.

〔음악〕

그의 작품은 양식변천에 따라 다음 4기로 구분한다. 그 자신이 작품번호를 붙인 빈 시절의 양식변천은 9곡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소나타, 16곡의 현악 4 중주곡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교향곡에서는 홀수번호와 짝수번호의 작품이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처럼, 독일적 음악과 오스트리아적 음악이 혼재해 있는 것도 그의 음악의 특징이다. 그리고 WO라는 번호는 G.L. 킨스키와 A. 할름이 1955년에 《베토벤작품목록》을 편찬할 때 베토벤 자신의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곡에 붙인 번호이다.

〔본 시절(1782∼92)〕

본에서 접촉하고 배운 여러 가지 양식을 짙게 반영한 학습시절이다. 건반악기를 위한 3개의 선제후(選帝侯)소나타(WO47, 1783)는 C.P.E. 바흐와 만하임악파의 영향과 함께 그의 독자성도 나타나 있다.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찬미는 3개의 클라비어 4 중주곡(WO36, 1785)에 나타나 있다.

〔빈 초기(1793∼1802)〕

개인교수에 의한 대위법 학습으로 시작되는 이 시기는 고전파 기악양식을 습득·발전·실험함으로써 그의 독자적 양식이 차츰 선명하게 나타난 시절이다. 《피아노 3 중주곡집(작품1, 1794∼95)》과 《피아노 소나타집(작품2, 1793∼95)》에서 4악장 구성, 소나타형식의 확대, 스케르초 사용 등, 베토벤의 새로운 면이 나타나 있다. 《현악4중주곡집(작품18, 1798∼1800)》에서는 대위법적 수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그 밖에 교향곡 제 1 번과 제 2 번, 피아노소나타 《비창》, 피아노협주곡 제 1 번과 제 2 번이 이 시기에 속한다.

〔빈 중기(1803∼12)〕

그가 쌓아올린 극히 논리적 형식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극적으로 전개하는 새로운 양식에 의하여 이 시기에 걸작이 속출되었다. 교향곡 제 3 번 《영웅》부터 제 6 번 《전원》에 이르는 4곡의 교향곡, 《코리올란서곡》, 피아노협주곡 제 4 번, 바이올린협주곡, 《라주모프스키현악 4 중주곡집》, 오페라 《피델리오》 등이 1808년까지 탄생되었다. 1809년 이후, 구축적인 주제의 전개를 중심으로 한 양식에서, 피아노 3 중주곡 《대공(작품97, 1810∼11)》에서 보여준 것처럼 선율적 주제에 의한 서정적 양식으로 변해갔다. 한편 교향곡 제 7 번(작품92, 1811∼12)과 제 8 번(작품93, 1812)에서는 리듬이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빈 후기(1813∼26)〕

작품의 침체기가 되는 1813년부터 16년까지의 시기는 가곡집 《멀리있는 애인에게(작품98, 1815∼16)》를 비롯하여 기악작품에서도 낭만파적 색채가 강해지는데, 17년에 착수한 피아노소나타 《하머클라비어(작품106, 1818년 완성)》를 출발점으로 다시 거대한 형식으로 되돌아가 후기양식의 정상으로 올라선다. 후기양식의 뚜렷한 특색은 푸가로 대표되는 대위법적 수법 및 변주기법을 중요시한 것이며, 시대를 초월한 다채로운 울림의 세계를 창조해갔다. 성악과 기악이 일체화된 《장엄미사곡》과 교향곡 제 9 번, 피아노소나타(작품106, 109, 110, 111) 4곡과 《디아벨리변주곡》, 현악 4 중주곡(작품127, 130, 131, 132, 135)의 5곡과 대(大)푸가는 바로크시대부터 최성기 고전파에 이르는 음악을 베토벤이 총결산한 작품으로서 주목된다.

〔연표〕

AD 1770  본에서 출생  

1776  아버지 요한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함  
1778 쾰른, 피아니스트로 공개연주회에 첫출연
1781  C.G. 네페가 본의 궁정오르가니스트에 취임. 네페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움  
1782 이 무렵부터 네페 부재시에 대리오르가니스트를 맡음. 최초의 피아노 작품 《드레슬러의 행진곡에 의한 9개의 변주곡》을 만하임에서 출판
1783 《클라비어를 위한 3개의 선제후 소나타》출판.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함  
1784 본의 궁정 오르가니스트 조수에 취임
1787  제 1 회 빈여행. 빈에서 W.A. 모차르트를 방문하고 즉흥연주를 함. 어머니 위독 소식을 듣고 본으로 돌아감. 어머니 마리아 죽음  
1788 발트슈타인 백작과 알게 됨. 브로이닝 집안의 딸 엘레오노라와의 첫사랑
1789 본대학 입학. J.C.F. 실러·J.W. 괴테의 사상에 관심을 가짐
1792  F.J. 하이든이 본을 방문, 하이든의 제자가 됨. 빈에서 하이든에게 작곡을 배움. 아버지 요한 죽음  
1793 J. 센크에게 작곡을 배움
1794 J.G. 알브레히츠베르거에게 작곡을 배움
1795 빈에서 자작 피아노협주곡 제 2 번을 연주
1798  이 무렵부터 난청 징조가 나타남  
1799 피아노소나타《비창》출판
1800 자신 주최의 첫 연주회를 열고 피아노협주곡 제 1 번, 7중주곡, 교향곡 제 1 번 등을 연주지도함
1801  J. 구이차르디에게 피아노소나타《월광》헌정  
1802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1804 교향곡 제 3 번《영웅》. 다임백작 미망인 요제피네와 사랑에 빠짐
1805 빈에서 오페라 《피델리오》 초연. 피아노소나타 《열정》
1806  클레멘토 주최의 음악회(빈)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  
1808 카셀궁정의 베스트팔렌국왕으로부터 악장으로 초빙되어 궁정행을 결심. 빈에서 교향곡 제 5 번《운명》, 교향곡 제 6 번《전원》,《합창환상곡》 초연
1809 카셀행 승낙 회답을 썼으나, 빈의 귀족들로부터 연금을 받게 되어 빈에 머무름. 피아노협주곡 제 5 번《황제》
1810 애인 T. 마르파티를 위하여《엘리제를 위하여》작곡
1811  피아노 3중주곡《대공(大公)  
1812 《내 불멸의 애인이여》를 A. 브렌타노부인 앞으로 씀. 이 무렵, 전후 4번에 걸쳐 괴테와 만남
1815 동생 카를 죽음. 이후 그의 아들 카를의 후견문제로 고민함
1818  청각을 거의 잃고 회화(會話)도 자유롭지 못하게 됨. 피아노소나타《하머 클라비어》  
1824  페테르스부르크에서《장엄미사곡》초연. 빈의 쾰른트나투르극장에서《장엄미사곡(1부)》과 교향곡 제 9 번《합창》초연  
1825 빈 악우협회(樂友協會)의 명예회원이 됨
1826  현악 4중주곡(작품 130) 초연. 병상악화  
1827 3월 26일 죽음. 벨링묘지에 안장됨
1888  빈 중앙묘지로 이장됨  

                                                   ***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설명1

1770년 12월 17일, 베토벤이 본에서 태어났을 때는 이미 신동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명성이 전 유럽에서 걸쳐 퍼져있을 때이었다. 이러한 신동에 대한 동경을 가진 베토벤의 아버지(Johann van Beethoven, 1740-1792)는 본의 궁정악단의 테너가수로 있으면서 베토벤을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1779년 10월부터 베토벤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평균율 악보를 가지고 있던 궁정악단의 오르간주자인 네페(Christian Gottlob Neefe)로부터 음악적인 기초지식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본에 계속 거주하며 모차르트에게 배우기 위하여 잠깐씩 빈을 방문하였으며, 모차르트가 죽은 이듬해(1792)에 하이든(Joseph Haydn, 1731-1809)에게 작곡을 배우기 위하여 빈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하이든에게서 그렇게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하여 음악사적으로 베토벤 음악의 초기시대라고 구분되어지는 비엔나시대(1802년경까지)가 시작된다. 이때에 베토벤은 그의 음악에서 전통을 따르고 있었으며, 균형적인 멜로디의 구성을 추구하고 완숙한 악곡 구조를 가진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초기의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삼중주곡, 현악 사중주곡 그리고 교향곡 1번과 2번 등이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청각장애로 인한 자살결심을 했던 1802년부터 1814년경까지를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기로 보는데, 이 시기에 그의 음악은 음악외적인 내용을 증가시켜 새로운 구조와 형식에 이르고 있다. 베토벤은 이 시기에 자신의 음악을 고전적 형식으로부터 탈피시키려 하였으며 더욱 자유로운 주제의 취급과 선율이나 화성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관현악법에 있어서의 변화 등도 추구하였다. 교향곡 3번 『영웅』이나 5번 『운명』, 6번 『전원』과 바이올린 협주곡이 작곡되었으며, 피아노 협주곡 5번 일명 『황제』도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 후기시대는 1814/15년부터 1827년 3월 26일 그가 비엔나에서 사망할 때까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특히 1819년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후 그는 자신의 영감에만 의존하여 창작하였는데, 이상적인 인간성을 위한 발언을 하고 시적인 내용과 섬세한 구조, 집중력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차호성]

설명 2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플랑드르(오늘날의 벨기에 지역)의 뤼티히와 메헬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베토벤과 똑같이 루드비히라 불렸다. 그는 뢰벤과 뤼티히의 합창단원으로 일했고 1733년 독일의 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1771년 이후 선제후의 카펠마이스터로 일했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은 할아버지가 일하던 악대의 테너 가수로 일했다. 베토벤은 일곱 자녀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일곱 중 세 명은 일찍 죽었고, 베토벤은 남은 형제들 가운데 장남 노릇을 해야 했다. 베토벤은 일찍부터 음악성을 보였는데, 이것이 아버지로 하여금 대단한 욕심을 품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이 아들을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키우고 싶어했다.

그는 어린 베토벤에게 열심히 쳄발로를 연습하도록 강요하였다. 어린 베토벤의 주요 선생으로는 궁정 오르가니스트였던 에덴(Gilles van den Eeden)이 있었다. 물론 주위의 친지 음악가들도 베토벤을 가르쳤다. 그 덕에 베토벤은 6세 때에 처음으로 청중들 앞에서 공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베토벤의 나이를 두 살이나 줄여 사람들에게 알릴 정도로 신동 모차르트를 의식했다. "신동 베토벤"을 시도한 행사는 무참히도 실패했다. 강요된 연습은 연주 실력을 대단하게 만들지 못했다.

1781년부터는 궁정의 다른 오르가니스트였던 네페(Christian Gottlob Neefe)에게 쳄발로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 사람은 베토벤의 연주 기량을 크게 발전시켰을 분만 아니라 친구처럼 지냈고 베토벤의 앞날을 위해 동분서주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베토벤이 베토벤이 된 것은 "신동 베토벤"을 기획한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이 네페였다. 베토벤은 그 다음 해에 궁정의 보조 반주자로 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네페는 베토벤에게 바하의 {평균율}과 칼 필립 에마누엘 바하의 쳄발로 곡들을 가르쳤다. 베토벤은 또한 루케지(Andrea Lucchesi)를 악장으로 하는 궁정 악대에서 당대의, 여러 가지 음악을 섭렵했다.

1783년 베토벤의 정상적인 음악교육은 끝나고, 그는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네페는 베토벤에게 궁정의원이었던 브로이닝(Helene von Breuning) 여사를 소개했는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베토벤의 앞길을 열어 주는 여러 가지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베토벤은 브로이닝 집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집으로부터 환영을 받는 손님이기도 하였다. 브로이닝을 통해 베토벤은 바이올리스트 리스(Franz Anton Ries)를 알게 되어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다. 그 대신 베토벤은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Ferdinand)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또한 그는 발트슈타인(Ferdinand Ernst von Waldstein) 백작을 알게 된다. 발트슈타인은 네페와 함께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를 움직여 베토벤을 비엔나로 보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들은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1787년 비엔나로 간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만난다. 하지만 베토벤의 어머니가 위독한 상태라서 후일을 기약하고 다시 본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본에 돌아와 스스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하는 하는 새로운 임무에 직면했다. 그의 아버지는 "신동 베토벤" 기획이 좌절된 후 술에 빠져서 가정을 추스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베토벤은 다시 본에서 궁정 오케스트라, 교회, 아카데미의 일을 하며, 작곡도 한다. 그가 본에서 쓴 작품들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1792년 이미 국제적인 인물로서 잠깐 본에 들른 하이든에게 소개된다. 이 때에 하이든은 비엔나에서 베토벤에게 작곡을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베토벤은 -발트슈타인의 주선으로- 다시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의 재정 지원을 받아 다시 비엔나로 가게 된다. 이 때 베토벤은 비엔나에서 공부한 후에 다시 본에 돌아와 음악가로서 일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하지만 이런 계획은 후에 프랑스 군대의 라인 지역 점령과 그로 인한 선제후의 폐위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하이든에게서 작곡 공부를 시작한 베토벤은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 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틀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하이든의 가르침에 대해 내적으로 저항했다. 그 대신 그는 하이든 모르게 쉥크(Johann Schenk)에게 가서 배운다. 하이든이 2차로 런던을 여행할 때에 베토벤은 알브레흐츠베르거(Albrechtsberger)에게 대위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는 엄격한 대위법의 규칙들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또한 그는 살리에리(Atonio Salieri)에게서 이태리 성악 작곡 방식을 배웠다. 푀르스터(Emanuel Aloys Forster)에게서는 실내악 형식을 배운다. 이러한 음악공부는 베토벤의 음악을 더욱 다양하고 성숙하게 한다.

베토벤의 비엔나 생활은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의 재정적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1794년 프랑스 군대에 의해 쾰른의 선제후 제도가 없어지면서 그의 지원은 끊기고 만다. 비엔나는 각 궁정에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음악가로서 활약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는 작곡과 연주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다. 그는 비엔나에서 새로운 후원자들을 확보한다. 리히노브스키(Lichnowvsky) 공과 에르되디(Erdody) 백작 같은 귀족들의 집에서 거하면서 그들 가족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러시아 대사 라주모브스키(Rasumowsky)백작, 에스테르하지(Esterhazy)공, 루돌프(Rudolf) 대공 등 당대의 귀족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이 귀족들과 일반 시민들은 베토벤에게 수많은 작곡 주문을 통해 그가 음악가로서만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베토벤은 분주한 음악가 생활을 비엔나에서 보낸다. 열정적인 음악활동을 통해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미래는 무지개빛처럼 보였다. 그의 후원자들(루돌프, 로브코비츠, 킨스키)은 그를 위한 재정 부담을 약속했고(1년에 4000굴덴의 종신연금), 악보출판사는 높은 작곡료를 지불했다. 그는 원하는 곳에서 음악회를 열 수 있었고, 그가 음악을 가르칠 마음이 생길 때면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 왔다. 그는 그 이전의 음악가들이 겪어야 했던 재정적 곤란을 거의 몰랐다. 그를 일컬어 최초의 자유로운 작곡가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1796년 그의 귀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1802년 그는 비엔나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쉬면서 그 유명한 유서를 쓴다. 그 내용은 절망 가운데서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는 절망적인 기분에 잠겨 살면서 주위 사람들과 자주 다투었고, 그의 가장 친한 후원자들도 그를 멀리하게 된다. 1808년에는 음악회를 전혀 열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음악사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연서인 {불멸의 연인에게}(An die unsterbliche Geliebte)라는 편지를 1812년에 쓴다.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였는지는 호사가들의 엄청난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아직도 명확하게 누구를 향한 편지인지 알 수 없다. 한때 요세피네 폰 브룬스빅(Josephine von Brunsvik)을 위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등장했으나, 그녀에게 보내진 베토벤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이 설은 시들해지고 말았다. 1810년대에 그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는 밀려드는 작곡 주문에 다 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해인 1815년에는 분위기가 반전한다. 그의 후원자들은 죽거나 비엔나를 떠났고, 음악계는 롯시니 열풍에 빠진다. 1819년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작곡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825년 그는 병마와 싸우다가 2년 후인 1827년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온 유럽의 지식층은 애도를 표했다. 20000명의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례했다. 시인 그릴파르쳐는 그를 위해 조사를 낭독했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던 젊은이 가운데는 슈베르트도 있었다.        

베토벤의 작품들은 세 시기로 나뉜다:

①초기 비엔나 시대, 1802년경까지.
비엔나의 전통을 따르는, 주로 하이든 식의 작품들을 작곡한다. 교향곡 1번, 2번, 피아노 소나타 작품 2, 7, 10, 13(비창), 14, 22. 베토벤은 스승으로서의 하이든에게는 별로 만족하지 못했으나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하이든으로부터 형식적인 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②중기, 1802-12/14
이 시기는 베토벤의 창작의욕이 가장 왕성할 때이다. 그는 밀려드는 주문을 다 받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주문을 받았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들은 다른 시기의 것들보다는 더 많이 연주된다. 교향곡 3번-8번. 피아노 소나타 작품26, 27, 28, 31, 49, 53(발트슈타인), 54, 57(열정), 78, 79, 81a(고별), 90. 32피아노 변주곡(WoO. 80)피아노 협주곡 3번-5번. 현악사중주 작품59, 74, 95. 삼중주 작품70, 97. 첼로 소나타 작품 69.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90. 합창 판타지(작품 80). C장조 미사(작품86). 에그몬트 서곡.

③후기, 1820년대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들을 수 없을 때에 작곡한 것들이다.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사중주들은 한 때 귀머거리 베토벤의 작품으로 정상을 벗어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오늘날은 베토벤의 작품들 중 가장 심각하고 진지한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향곡 9번. 피아노 소나타 작품101, 106, 109, 110, 111. 장엄미사(작품 124). 현악사중주 작품 127, 130, 131, 132, 135.

○베토벤의 테마 모티브 가공 기법:
베토벤은 아주 작은 구조의 모티브를 선호했다. 이 모티브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나와 주로 음악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작은 모티브들은 더 큰 테마의 일부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은 모티브가 테마의 균형감각을 잠시 잊게 하고 계속적인 "추구"와 "돌진"의 회오리로 향하게 한다. 이 모티브는 잠시 휴식도 하고, 길게 늘려지기도 하고, 축소도 되고, 다른 테마 모티브 음형들에 의해 잠시 가려지기도 하지만, 곧 다시 새로운 힘을 가지고 나타난다. 특히 그의 모티브들에서 많이 보는 치는 박을 비우는 경하양은 셈하는 박을 강하게 의식해야 정확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엇갈린 박(싱코페이션)의 모티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모티브들은 셈하는 박과 함께 고안된 것들이다.

○심포니
베토벤 심포니 1번(1799)과 2번(1802)은 그의 초기에 속하는 곡으로 하이든적인 차분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심포니는 3번(1803, {영웅})에서부터 본격적인 "베토벤적" 특징들을 드러낸다. 끈질긴 테마 모티브 작업을 통하여 극적이고 긴장이 넘치는 거대한 음악을 형성하는 것, 극적인 성격이 강한 전개부에 비중이 오는 것(제시부 150마디, 전개부 250마디)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긴장을 불러오는 효과는 모티브의 리듬적 특징과 그 변형을 통해 이루어진다. 테마 모티브 작업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5번 심포니(1807)이다. 이 작품의 1악장은 짧고 강력한 <4음 모티브>를 통해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긴박감 있는 음악적 과정을 보여준다. 5번의 마지막 악장은 행진곡적 C장조로 음악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면서 끝난다.  -4, 7, 8번은 1, 2번과 마찬가지로 기악의 형식적 측면을 따르는 절대음악 작품이다. -6번 심포니({전원})는 프로그램 음악이다. 전원적 F장조의 테마가 울리다가 새소리, 폭풍우 소리 등이 울린다.  -9번({환희})은 심포니와 오라토리오를 합성시킨 곡. 마지막 악장에 성악(독창들, 합창)이 온다. 대위법의 사용이 다른 심포니들에서 보다 많이 증가했다.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개는 오늘날 연주장의 핵심 레퍼토리에 속한다. 그의 피아노 작품 역시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뉠 수 있다. 소나타악장 형식이 올 곳에 변주곡, 판타지, 푸가 등이 사용되기도 했다.
-초기: 작품 2의 1 가량은 표면적으로 하이든과 아주 유사하지만, 모티브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극적인 성격을 형성시키는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 13번({비창})은 어둡고 "무겁게"(Grave) 시작하는 느린 첫머리를 통해 감정과다적이고, 주관적인 성향을 표출한다.

-중기: 이 시기는 작품 26부터 시작된다. 첫 악장에서 소나타악장 형식을 쓰지 않고 변주곡을 사용했다. 느린 악장에서 유명한 장송행진곡이 나온다. 작품 27, 1-2번(E 장조, C 단조 {월광})은 "거의 판타지처럼"(Quasi una fantasia)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다. 고전적 형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판타지 형식을 쓰게 했다. 작품 31의 2번({템페스트}) 1악장은 끊임없는 모티브 가공 작업을 보여주지만, 레치타티보에 흡사한 테마는 고전적인 소나타악장 형식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게 한다. 작품57({열정})은 제1테마 자체가 두가지 상반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유니즌/화음, 하강/상승, pp/ff). 이 "갑작스러운" 성격의 테마 뒤에 부드러운 제2테마가 따라온다.
-작품101(1816) 이후의 5 작품들은 후기의 것에 속한다. 모두가 폴리포니적 요소를 사용한다.

○현악사중주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들도 그의 작품 시기구분에 따른 초기, 중기, 후기의 흐름을 같이 보여주고 있다. 중기의 것들은 베토벤적이면서도 대중적이다. 그런데 후기 현악사중주는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작품127(1822-25), 132(1824-25), 130(1825-26), 131(1825-26), 135(1826). 후기 현악사중주들의 중심적 기법은 푸가이다. 푸가의 한 테마로부터 다른 여러 테마들이 발생하며, 이를 소나타악장의 극적인 성격과 결합시킨다. 또한 후기 소나타들은 당시의 생각으로는 지나치게 불협화음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작품132 a단조 아다지오 악장에는 "치유받은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감사찬송, 리디아 선법"이라는 말이, 작품135 종악장의 중심 테마에  "꼭 그래야 하나?"(Muss  es sein), "꼭 그래야 해!"(Es mu  sein!)라는 말이 선율에 맞추어져 붙어 있다. 이는 베토벤에게서 흔히 보는 비음악적인 내용을 넣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내용출처 : [인터넷] http://www.um-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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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an Beethoven(1770 본-1827 빈)

베토벤의 조상의 발자취는 말린과 루벤(벨기에)의, 농민의 신분에서 시민이 된 사람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성(姓)이 의미하는 것은 사탕무밭이며 판 van에는 아무런 귀족적인 의미도 없다. 1712년에 최초의 음악가 베토벤 노(老) 루트비히가 태어난 곳은 말린이다. 그는 본으로 이주하여 궁정음악가로서 대주교이기도 했던 선제후를 섬겼다. 그의 아들 중 오직 유일하게 살아 남은 요한이 그의 뒤를 이었으며, 이 궁정 예배당의 테너 가수가 되었고, 1767년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케베리히 Maria Magdalena Keverich와 결혼했다. 그녀도 토리아 선제후의 요리장의 딸이었는데 상냥하고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1787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의 7명의 자녀 중 성인이 된 것은 세 사람뿐이었다.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는 1770년 12월 16일인가 17일 본의 뒷골목에 있는 그들의 초라한 집에서 태어났다.

조숙한 대천재

모짜르트 같은 신동이 되기를 바랐던 자기의 아들에 대한 요한의 가혹함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전해지긴 했어도 베토벤의 소년시대가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초기에 배웠던 교사들은 그때그때에 따라서 일정하지 않았다(순회 악단의 테너 가수였던 토비아스 파이퍼 Tobias Pfeiffer, 바이올린 주자인 로반티니 Rovantini, 궁정의 연로한 오르간 주자인 에기디우스 판 데어 에덴 Aegidius Van der Eeden 등). 그런 베토벤의 최초의 본격적인 교사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에덴의 뒤를 이은 크리스찬 고틀로프 네페이다. 그리고 아들이 그의 엄격한 감독하에서 급속한 진전을 보여 12세 때 궁정 예배당의 대리 오르간 주자를 맡을 정도가 되면서 보수도 받게 되고 맡은 책임도 커짐에 따라 아버지는 더욱 술에 빠지고 타락해 갔다. 베토벤이 아버지의 집에서 점점 떨어져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폰 브로이닝 von Breuning의 집에 기거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브로이닝의 집안은 베토벤에게 있어서 제2의 가정이 되었다.

그의 재능의 개화는 이내 이 친목서클의 밖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새로운 선제후이며 계몽적 군주인 막스 프란츠공의 총신이었던 발트슈타인 Waldstein 백작 덕분에 베토벤은 음악을 더욱 연마하기 위하여 빈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 최초의 빈 체재(1787)에 관해서는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모짜르트를 만날 수는 있었으나 병으로 쇠약해진 데다가 돈 조반니의 작곡에 몰두해 있던 그는 이 젊은 천재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버린 것 같다. 가르침을 받는 것도 인정받는 일도 없이 고작 격려를 받았을 정도일 것이다. 베토벤은 본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의 임종에 입회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완전히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두 동생인 요한 Johann과 카스파르 Kaspar의 양육은 루트비히가 맡지 않으면 안 되었다(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대(1790)의 작품으로는 요제프 2세 장송 칸타타와 레오폴트 2세 대관식 칸타타가 있는데, 두 곡 모두 너무 어려워서 연주되지 않았다. 상당히 인습에 사로잡힌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 어색함은 위대한 음악가의 도래를 확실히 예상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본에 갔을 때 그 작품들을 본 하이든은 청년 베토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자기한테 오도록 초청했다. 다시 충실한 발트슈타인의 주선으로 1792년 11월 2일 베토벤은 본에 최후의 작별을 고하고 빈으로 떠났다. 발트슈타인은 하이든의 손에서 모짜르트의 정신을 찾아내십시오라고 송별 기념장에 써넣었다.

빈 귀족의 피아니스트

게르만 세계의 수도이며, 궁정과 궁전, 그리고 성 밖 외곽지대인 교외로 이루어진 도시인 빈은 유행과 쾌락의 도시이면서도 완고하게 전통을 지키는, 분명히 피상적인 도시였다. 천재들의 활동무대였던 이 도시는 막 공동묘지에 묻힌 모짜르트에서 그 존재마저 무시되는 베베른까지 고의로 부인하게 된다. 그러한 빈은 우선 베토벤을 호의적으로 맞이했다. 그는 곧 음악을 애호하는 귀족들의 호감을 사게 된다. 리히노프스키 Lichnowsky, 로프코비츠, 슈바르첸베르크 Schwarzenberg, 즈메스칼 폰 도마노베츠 Zmeskall von Domanovecs 같은 귀족들은, 이미 청년 음악가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그 독창성이 특징적이었던 3개의 피아노3중주곡 op. 1(1794~95)의 악보 예약자에 포함되어 있다. 하이든에게 헌정된 3개의 피아노 소나타 op. 2(1795~96)를 끝으로 베토벤은 교사로서의 하이든과는 작별을 고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이든 밑에서의 지속적인 공부가 실제로는 산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솅크, 알브레히츠베르거, 살리에리 같은 다른 교사들-역시 불규칙한 것이었지만-을 찾아가 이들 밑에서 자기가 필요로 했던 기술적인 지식을 빠르게 획득했다. 그래서 1795년에는 이미 자신의 직업이 요구하는 기술과 개성, 그리고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의 기교를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은 1795년 3월 빈에서 가진 베토벤의 최초의 대연주회였다. 그가 거기에서 연주한 것은, 그가 작곡한 카덴짜를 붙인 모짜르트의 협주곡과 전전날 완성한 그의 최초의 협주곡(후에 협주곡 제2번으로 출판된다)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재능이 이미 압도적이고 저항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이 분명했던 영역은, 당시의 수많은 증언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피아노의 즉흥연주였다. 그는 거기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구사했던 것이다. 그 무렵 베토벤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빈의 모든 살롱에 나타나서 청중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들의 눈물과 흐느낌(체르니)을 이끌어냈다.

혁신적 사상

피아노 소나타 op. 7, op. 10(1796~98)에서, 특히 D장조의 소나타에서 베토벤은 그의 천재성의 근대적 성격, 대담함, 불균형, 전대미문의 극적 힘 등을 이미 한꺼번에 들려주고 있었다. 피아노 소나타 op. 103의 라르고 에 메스토는 특히 그것을 놀라운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는 모든 음악적 어법이 몇 개의 새로운 방법에 따라 묶여 있는데, 그 구조에 있어서는 옛 위계질서가 뒤집혀지고 화성적, 리듬적, 역학적 수렴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악 보 삽 입

여기에 이어지는 소나타 비창 op. 13 및 op. 26과 op. 27은 전통적인 양식에 대한 베토벤의 위협을 폭발시키고 있다. 즉, 주제의 이중성과 그것들의 전개 수준에서의 전도(轉倒), 악장 배치에 대한 문제 제기(환상곡풍 소나타 op. 27) 등을 보인 것이다. 또한 1801년 출판된 6개의 현악4중주곡 op. 18(특히 그 중 최초로 작곡된 op. 183)도 그러한 혁신적인 사상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사상은 음악의 역선(力線)을 자유로운 기준성역, 성부, 강도의 대립, 격렬한 대조성, 극도의 세련미 등에 바탕을 두어 결합시키고 있다. 현악4중주곡 제6번(작곡 순서로 보자면 6곡 중 5번째)에서 모든 음악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부분의 하나인 라 말린코니아(우수) La Malinconia라는 제목의 아다지오는 극성(極性)을 지니지 않은 하모니와 서로 상반되는 힘이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전개를 들을 수 있다. 이 전개는 후기의 베토벤을 예고하는 것이다.

빈에서의 이 최초의 수년간은 베토벤으로서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성공, 귀족의 총애, 베겔러 Wegeler와 리즈, 아멘다 Amenda, 즈메스칼, 그리고 그의 음악의 지칠 줄 모르는 개척자였던 바이올린 주자 슈판치히 등과의 오래 지속된 깊은 우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01년 빈을 떠나 있던 베겔러와 아멘다에게 보낸 6월의 두 편지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베토벤이 얼마 전부터 감추어 오고 있던 것난청(難聽) 증세가 나타나서 진행되고 있었으며, 결국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을 처음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절망은 그의 인생에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출현함으로써 일시적으로 가라앉았거나 소강상태로 연장된 것 같았다. 16세의 줄리에타 구이치아르디 Giulietta Guicciardi의 경박한 매력은 빈을 정복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월광이라 불려지는 피아노 소나타 op. 272를 그녀에게 바쳤다. 이 연애의 진실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한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은 것은 전설뿐이다. 어쨌든 줄리에타는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하여 베토벤을 고독과 절망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이 고독과 절망을 전해주는 것이 바로 1802년의 비통한 수기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이다. 자살이라는 생각이 베토벤을 사로잡고 있었다(예술이다. 그것만이 나를 잡아주었다고 그는 적고 있다). 그가 하일리겐슈타트에서의 은둔에 종지부를 찍고 빈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완성한 교향곡 제2번의 악보를 지니고 있었다. 이 곡의 쾌활함과 활기참은 작곡가의 인생과 작품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주해자(註解者)들의 관념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것이었다. 또한 이때에는 교향곡 제3번의 제1악장도 그 스케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교향곡 제1번부터 이미 베토벤은 그 천재성이 지닌 대담한 측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형식에 나타나 있다. 이 곡의 으뜸조 C장조는 긴 12마디의 아다지오로 된 화성의 역정(歷程)을 거쳐 처음으로 출현한다. 이 아다지오는 이제까지 없었던 매우 확실한 도입부로서 교향곡 제2번에서도 볼 수 있다(첫머리의 알레그로에 선행하는 33마디의 아다지오). 그리고 그 대담한 측면은 관현악 편성에도 이어지는데, 관악기를 더 중요시함으로써 지금까지 현악기가 최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을 부정한 것이다(이 점은 비평가들도 인정하고 있으며 베토벤이 군악대용 음악을 썼다고 비평했다). 1804년 초에 완성된 교향곡 제3번에서 오케스트라에 관한 베토벤의 혁신적인 사상은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즉, 음향이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음악의 구축 양식속으로 들어가서 하모니의 변용과 결부되어 음색전조(音色轉調)라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했다. 여기에 제1악장에서 발췌한 예를 든다.


E♭장조 F장조 D♭장조
첼로 F조관 호른 플루트-바이올린
B♭장조 E♭장조
플루트 2-비올라-오케스트라 전체
저음현

템포가 느린 악장, 즉 장송행진곡 부분에서 음색은 리듬과 결부되어 엉뚱한 혼합물-어둡거나 명확한-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결합이 이 악장의 극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마지막 악장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op. 43의 주제 위에 구축되어 있으며, 론도의 전통적인 형식이 배제된 12개의 변주곡 형식을 취한 오스티나토로 전개된다. 이 걸작을 둘러싼 역사적인 배경은 이미 많이 논의되어 왔다. 거기에 따르면, 1798년 이래 철저한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로마 공화국 집정관과 동등하게 보았으며 이 곡을 그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라 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하여 헌사를 적은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영웅 교향곡이라는 최종적인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피델리오에서 전원까지

1804년 한해 동안 베토벤은 그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 피델리오*를 작곡했다. 당초 레오노레*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던 이 작품의 부부애를 찬미하는 테마는 프랑스의 극작가 부이이 Bouilly에 의한 것인데, 뒤에 트라이추케 Treitschke에 의해서 보완되었다. 1805년에 완성하여 11월 20일 빈에서 초연되었으나, 당시의 빈이 나폴레옹군에게 점령되어 있었기 때문에 객석은 거의 텅텅 비어(빈 사람들은 거의 시내를 빠져 나간 상태였다) 공연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렸다. 친구들의 간청에 따라 베토벤은 구성을 대폭 변경하고 삭제하여 1806년 3월 29일 이 작품을 재상연했다. 이때는 전번보다는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더욱 철저히 개정하여 이 오페라가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이로부터 8년 후의 일이다. 피델리오는 근대적인 음악극의 예시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유로운 성악 파트의 서법과 대사와 음악의 일치,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주어진 매우 중요한 역할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케스트라는 갖가지 소리가 정돈되어 나타나 퍼져가는, 글자 그대로 연극의 장(場)이 되고 있다.

이처럼 결실이 풍부한 시기(1804~08)에 씌어진 작품으로는 우선 교향곡 제4번과 발트슈타인에게 헌정된 피아노 소나타 op. 53이 있는데, 이 op. 53은 색조라는 영역에 있어서 혁명적인 피아노곡 서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어서 장대한 피아노 소나타 열정 op. 57,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의 새로운 제자이자 친구가 된 로돌프 대공에게 바쳐진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이 있으며, 빈 주재 러시아 대사이며 작곡가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주문에 의한 3개의 현악4중주곡 op. 59도 이 시기의 것이다. 이 op. 59에 관해서는 X난해, 복잡, 불협화라는 평을 받았다. 이것은 이들 곡의 구상의 근대성과 연주기술에 관한 엄격한 요구를 의미하고 있다. 특히 이 4중주곡의 세번째 곡 최후의 푸가에서 그러한 경향이 강하며 그 역학(力學), 음역, 속도, 일관성 등에 있어서 개념상의 연주 규범은 전혀 새로워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내 안에서 정신이 숨쉴 때는 바이올린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교향곡 제5번과 제6번이 1805년부터 1808년 사이에 동시에 작곡되어 1808년 12월 22일 함께 초연되었다. 제5번은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며 제9번과 함께 가장 많은 주석이 붙여진 작품이다. 이 곡은 테마라는 관념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높였다. 이 주제는 3개의 단음(短音)과 1개의 장음(長音)으로 되어 있는 기본적인 리듬 구조로서 세계의 모든 음악과 시, 그리고 베토벤의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교향곡 제5번의 모든 악장에 있어서 갖가지 방법에 의해서 그것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 X전개이다. 다른 장(場)에서는 묻혀 있던 이 리듬 구조는 작품이 그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여기에서는 운명의 테마가 되었다. 교향곡 제6번 전원의 수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제6번은 그 반농담(半濃淡), 세련된 색조, 명상적인 시정에 있어서 자연에서 착상을 얻고 있다. 베토벤은 정경묘사는 불필요하다. 음악에서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베토벤은 표제음악에 대해서, 그의 음악의 너무나 획기적인 해석에 대해서 경계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해석은 음악이 주권을 쥔 다른 세계 autres contrees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피로와 낙담

리히노프스키와의 불화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빈과 그곳에 들끓는 책모에 지친 베토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한다. 실제로 떠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의 상냥하고 헌신적인 친구 마리 폰 에르되디 Marie von Erdody 부인의 중개로 작곡가를 숭배하고 있던 귀족들의 반응을 촉진시키게 되었다. 1809년 3월 1일 킨스키 공작, 로프코비츠 공작, 로돌프 대공 등 세 사람이 베토벤에게 연금 4000플로린을 보장하는 명령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증서는 그들의 상속인들에 의해서 파기되어 버렸다. 한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다시 전쟁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의 원고에는 전투를 위한 승리의 노래! 공격! 승리!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것은 기교가 뛰어난 협주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교향곡이라고 할 만한 작품인데, 피아노는 그 자체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적인 울림을 가진 악기였다. 황제라는 별칭은 명명자의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체르니의 피아노 독주로 1812년에 초연되었고, 고별(잠시 빈을 피했던 대공의 귀환을 축하)과 마찬가지로 로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의 생애를 통해 몇 사람의 여성이 스쳐가는데, 그들은 그의 참다운,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사랑을 자기 것으로 하고 있던 미지의 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 괴테의 청년시절의 친구였던 베티나 브렌타노 Bettina Brentano, 아말리에 제발트 Amalie Seebald, 테레자 말파티 Teresa Malfatti는 여자친구, 정열적인 우정으로 맺어진 여성들일 뿐이었다. 베토벤의 사후에 발견된 예의 편지가 지목하는 불멸의 연인이 과연 어느 연인을 가리키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가려져 있다. 오랫동안 그것이 테레제 폰 브룬슈빅 Therese von Brunsvick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오늘날에는 테레제의 여동생이며 다임 백작의 미망인이던 요제피네 폰 브룬슈빅 Josephine von B.이나 베티나의 사촌인 안토니에 브렌타노 Antonie Brentano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1812년 여름(그 편지는 이때 씌어졌다), 온천지인 테플리츠에서의 괴테와의 면담, 교향곡 제7번의 완성, 리츠 체재 중 교향곡 제8번의 작곡이 이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상반된 성격을 가진 한 쌍의 교향곡이다. 제7번의 제2악장에서 느껴지는 우수는 이 곡 전체에 퍼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제8번의 작렬하는 환희가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1813년부터 1819년에 걸쳐서 베토벤은 길고 심각한 위기를 지나온 것처럼 생각되었다. 고뇌가 진정되자 그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고 적고 있다. 그의 창작활동 자체가 실의에 빠져 단지 돈벌이를 위해 소규모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운명에 도전이나 하듯이 몇 개의 걸작이 태어나는데 첼로 소나타 op. 102(1815), 연작가곡 아득히 먼 연인에게(1816), 전통 형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피아노 소나타 op. 101(1816), 그리고 1817년부터 1819년에 걸쳐서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op. 106마지막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하머클라비어(해머식의 피아노를 위해서)라고 적혀 있는 작품이다(해머식 피아노는 당시 개량이 거듭되고 있었다. 베토벤이 자신의 소나타를 위하여 지시한 것은 가장 표현력이 있는 당시의 최신형이었다)이 바로 그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op. 106은 베토벤의 걸작 중 하나인데, 단 몇 줄의 글로 이 환상적인 악보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곡은 상반하는 힘이 부딪치는 가운데 생겨나며 자신의 거친 힘을 담은 장대한 푸가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베토벤의 푸가에 그 예외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 그 자체, 그리고 그 푸가를 유일무이한 창조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결국 서로 맞부딪치게 되는 종류가 다른 엄격함의 부딪침이다. 가능한 것의 한계에서 푸가가 증언하고 있는 것은 엄격한 양식의 상징으로 일관하는 형식과 점점 신랄함을 증대시키면서 해방되어가는 조화적인 관념 사이의 더욱 확실해져 가는 단절인 것이다(P. 불레즈). 이 소나타에서 보이는 고전적인 형식이 후기의 피아노 작품에서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그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op. 109(1820)와 그 최후의 변주곡에서의 절대적인 자유, 그리고 op. 110(1821)의 상궤를 벗어난 구축 등이다.

그리고 op. 111의 피아노 소나타(1821~22)는, 제2악장과 최종악장의 멋진 아리에타의 온화한 반향음 속에 소나타에의 고별(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을 적고 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무너져간 고전주의의, 고도로 체계화된 구축물의 하나인 동시에 새로운 여러 형식의 창출로 열려진 시대의 개시인 것이다.

최악의 궁핍

1817년과 1818년은 베토벤의 생활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질병폐질환, 황달과 난청으로 인한 고독, 몇 통의 편지가 반영하고 있는 은밀한 고뇌에, 가족에 대한 걱정거리와 집을 자주 나가는 조카 칼 Karl(그의 동생이 죽기 전 아내와 형에게 그 후견을 부탁한 아이)의 존재가 겹쳐진 것이다. 베토벤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으나 논란이 많았던 후견인 자격에 관한 소송은 그에게 더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그러나 4년에 걸쳐서 마무리한 한 작품이 그를 이러한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 작품은 바로 장엄 미사였다. 이것은 로돌프 대공이 올뮈츠 대주교로 취임하게 되어 그 임명식에 사용할 곡을 베토벤에게 의뢰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베토벤은 다시 작곡에 몰두했다.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와 병행하여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가 탄생했고, 새로운 교향곡의 스케치가 모습을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제9번이다. 이 불멸의 두 작품의 어느 쪽을 보더라도 그것은 교회의 연주회라는 테두리를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미사도 제9번도 미사곡이나 교향곡이라는 용어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전자는 전례용 기능이 강해서 오늘날에는 성대한 제전 때 사용하는 음악이 되었으며 후자는 전인류의 송가가 되었다. 미사곡은 큰 블록을 단위로 하여 작곡되어 그 광대함과 중량감, 통일성이 세부를 지배하고 있다. 종교음악의 모든 관념에 도전하는 듯한, 거의 극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에서 세부적인 것이 중요성을 되찾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크레도뿐이다. 인 비탐 In Vitam의 푸가가 이 작품을 그러한 연주성에서 분리시켜 본래의 구축적인 배경 속에 내놓고 있다. 그리고 도나 노비스 파쳄에 의해서 작품은 온화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다.

교향곡 제9번 op. 125는 베토벤의 창작활동 전기간에 걸쳐서 그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792년 이래 베토벤은 실러의 환희에 부쳐에 심취해 있었으며, 1817년에는 성악을 도입한 오케스트 작품을 스케치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 교향곡의 작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1822~23) 인성에 의한 피날레는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1823년 말에 드디어 종합된다. 실러의 환희에 부쳐는 1824년 5월 7일 공연된 이 작품의 최후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곡의 처음 3악장은 각기 그 악장을 상기시키는 도입부에 의해서 최후의 악장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환희의 주제는 여기서 소극적으로 등장하고 저음의 현악기에 의해서 매우 부드럽게 불려지다가 점차 확산이 시작된다. 이 주제는 각종 음악 중에서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인데 그야말로 작곡자의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 얻어진 것이며, 이 주제의 200개 이상의 상태가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베토벤은 대부분의 작품의 방대한 양의 스케치 중에서 한 주제의 발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체가 되는 상태를 추구해 왔다. 그러던 것이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변화를 받는 일도 없으며 스스로 변화하는 일도 없는 무수한 노래에 의해서 항구적인 이상적 상태를 추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피날레의 발전부는 실제로는 전혀 발전이 아니라 똑같은 것의 확대이며 어떤 이념의 찬미이자 주문인 것이다. 그래서 이 피날레는 연주회장을 초월하여 송가(頌歌)라는 운명을 지게 된다.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된 한 기념비적 작품이 미사와 제9번 사이에 존재한다. 바로 디아벨리의 왈츠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op. 120(1823)이다. 이것은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상식을 초월한 작품이며 주제라는 관념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변주곡이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있다. 이 장대한 행정(行程)에서도 전편이 주제이며 변용이기도 하다. 이 행정은 기본이 되는 화성의 서식만을 편재하는 근본 주제로 가지고 있으며, 이 화성의 기본 서식은 작품을 통하여 33개의 상상력의 섬광을 이끌어내는 동일한 동인력(動因力)이 되고 있다.

평온과 고독

생애의 말기에 이르러 베토벤은 기묘한 균형상태에 이른 것 같다. 이 무렵부터 그의 생활은 완전히 내적인 것이 되어 최후의 창작활동으로, 몇 편의 현악4중주곡이 그의 말년에 작곡되고 있다. 성공에 무관심해지고 복장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사람을 싫어하게 된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필담장(筆談帳)을 통해서만 하게 되었다(베토벤의 하인이었던 제자 신들러는 이 필담장의 파괴와 삭제를 자행했다). 장 질환과 시력 감퇴가 그다지 심하지 않을 때는 은(銀)의 백조정(白鳥亭)에서 친구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오랫동안 독백처럼 떠드는 베토벤의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었다. 거기에는 철학이나 정치에 대한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그가 이상으로 삼고 있던 영국인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베토벤의 칼에 대한 배타적이고 질투 어린 애정(베토벤은 칼의 어머니를 미워했다)은 그들 사이를 더욱 나쁘게 하여, 조카는 끊임없는 충돌로 정신의 안정을 잃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극도의 낙담, 그리고 화해, 두 사람의 그나이크센도르프에 있는 동생 요한의 집에서의 체류는 형제간의 언쟁을 초래했고, 머리끝까지 화가 나 비가 오는 데도 마차를 타고 빈으로 간 베토벤은 이미 폐렴에 걸려 있었다. 그는 1827년 3월 26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래도 고독 속에 세상을 떠난 그의 장례 행렬에는 2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최후의 창작활동

최후로 작곡된 몇 개의 현악4중주곡은 베토벤의 내면세계를 아주 잘 나타낸 걸작이다. 이들 작품 번호는 실제의 작곡 순서와는 다르다. 현악4중주곡 제12번 op. 127(1825)과 그 거울의 유희에 이어지는 것은 작곡 연도에 따르자면 op. 132에 해당하는 제15번이다. 리디아 선법으로 씌어져 있는 이 작품의 제2악장 감사의 노래 Chant de reconnaissance는 음악의 한 정점을 이루고 있다. 1826년 완성된 제13번은 6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제5악장의 멋진 카바티나에서는 쉼표가 음표와 같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또한 이 작품을 끝내는 것은 대푸가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베토벤은 대푸가를 이 작품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처럼 대규모이고 더욱이 놀라운 화성적 긴장에 지배된 이 유기물(有機物)이 도대체 무엇에 접합될 수 있었을까? op. 133의 대푸가는 이 곡이 거기에 어울리게 보이는 이상 더욱 격렬하게 고전적 도식을 부수고 있는데, 이 말이 가진 모든 의미에서 고립된 걸작이다. 1826년 완성된 현악4중주곡 제14번 op. 131은 형식면에서 이 작곡가의 가장 대담한 작품이다. 성격이 아주 다른 7개의 악장이 작품 전체의 통일은 무시하고 있지만, 처절한 압력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처럼 그것을 성취하여 버리는 것이다. 최후에 작곡된 현악4중주곡 제16번, op. 135(1826)는 특히 여러 주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 원인은 최종 악장의 첫머리에 적혀 있는 유명한 명구(銘句)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Muss es sein?이렇게 해야 한다 Es muss sein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에 관계된 비극적인 물음이 아니라 단순한 농담의 문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 선행하는 조용한 휴식의 노래, 평화의 노래 속에서, 그리고 그 멋진 변주 속에서 베토벤은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고별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만년의 현악4중주곡, 디아벨리 변주곡,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 등은 베토벤의 사상을 최고로 달성시키고 있는데, 이들 작품은 그의 창작활동의 초기에 씌어진 걸작들에서 이미 명확해진 혁신적 정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전통적인 어법의 기초가 이미 초기 작품에서, 음악적 위계질서나 형식에 있어서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구조에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op. 103에서 op. 53까지, op. 57부터 op. 111까지 현악4중주곡의 제3번 op. 18부터 라주모프스키 제3번 또는 대푸가에 이르기까지 개개의 작품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재료를 새로운 구축물에 제공했던 것이다. 베토벤의 창작활동을 분명히 구분지어 2기, 3기, 또는 4기(뱅상 댕디에 의하면 모방기-변천기-반성기)로 구분하는 것은 그 분류가 진보라는 조잡한 관념, 예술에 있어서는 기만이라 할 수 있는 관념을 포함하는 것인 만큼 더욱 잘못된 것처럼 생각된다. 자기의 창작활동의 내부에서의 분류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범주 내에서의 분류도 불가능하다. 베토벤은 사람들이 고전파나 낭만파, 이 두 부류 증 하나에 그를 집어넣으려 하는 것을 거침없이 초월하고 있는 듯하다. 두 정신세계의 경계 지역에서 그의 작품은 그 본성에 의해서 역사를 일탈하고 있다. 즉, 현재에도 끝없이 독창적이며 항구적인 베토벤의 작품은 근대적이며, 근대성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정의하고 명확하게 하며 구현한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어법으로 그러한 관념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재창조하고 가공했던 것이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베토벤의 작품과 함께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 작품이 영원히 새롭고 혁신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이러한 대화 속에서인 것이다.

A. B.

주요 작품

킨스키 할름 KinskyHalm의 작품 목록인 WoO(Werke ohne Opuszahl[작품 번호가 없는 작
품]) 번호는 작품 번호가 없는 것의 분류 때 사용되어 왔다.

[피아노곡]

◇소나타

▶3개의 선제후 소나타 3 Kurfurstensonaten WoO 47(1782~83)
▶피아노 소나타 제1번, 제2번, 제3번 op. 2(1795~96)
▶제20번 op. 492(1796)
▶제4번 op. 7(1796~97)
▶제5번, 제6번, 제7번 op. 10(1796~98)
▶제19번 op. 491(1798)
▶제8번 "비창 Pathetique" op. 13(1798~99)
▶제9번, 제10번 op. 14(1798~99)
▶제11번 op. 22(1799~1800)
▶제12번 op. 26[장송 행진곡 Trauermarsch 딸림](1800~01)
▶제13번 op. 271[환상곡풍 소나타 Sonata quasi una fantasia](1800~01)
▶제14번 "월광 Mondschein" op. 272[환상곡풍 소나타](1801)
▶제15번 "전원 Pastorale" op. 28(1801)
▶제16번 "부점 La Boiteuse", 제17번 "템페스트 Tempest", 제18번 "메추라기 La Caille" op. 31(1801~02)
▶제21번 "발트슈타인 Waldstein"(L'Aurore[F]) op. 53(1803~04)
▶제22번 op. 54(1804)
▶제23번 "열정 Appassionata" op. 57(1804~05)
▶제24번 "테레제에게 A Therese" op. 78(1809)
▶제25번 op. 79[독일 무곡풍으로 alla tedesca](1809)
▶제26번 "고별, 부재, 재회 Lebewohl, Abwesenheit, Wiedersehn" op. 81a(1809~10)
▶제27번 op. 90(1814)
▶제28번 op. 101(1816)
▶제29번 "하머클라비어 Hammerklavier" op. 106(1817~19)
▶제30번 op. 109(1820)
▶제31번 op. 110(1821)
▶제32번 op. 111(1821~22)

◇변주곡

▶가곡 "Ich hatt'ein Kleines Huttchen nur"에 의한 8개의 변주곡 Peters 298b
▶드레슬러의 행진곡 주제에 의한 9개의 변주곡 9 Variationen uber einen Marsch von E. C. Dressler WoO 63(1782)
▶스위스 노래의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WoO 64(1790경)
▶리기니의 아리에타 "연인이여 오라 Venni amore"의 주제에 의한 24개의 변주곡 WoO 65(1791, 제2판 1802)
▶디터스도르프의 빨간 두건 Es war einmal에 의한 13개의 변주곡 WoO 66(1792)
▶하이벨의 발레 "방해받은 결혼 Le nozze disturbate"의 "비가노의 미뉴에트 Menuet a la Vigano"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68(1795)
▶파이지엘로의 오페라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La Molinara"의 아리아 "시골의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Quant'e piu bello"의 주제에 의한 9개의 변주곡 WoO 69(1795)
▶파이지엘로의 오페라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의 2중창 "이제 내 마음은 이제 텅 비어 Nel cor piu non mi sento"의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WoO 70(1795)
▶브라니츠키의 발레 "숲 속의 아가씨 Das Waldmadchen"의 러시아 무곡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71(1796)
▶그레트리의 "불타는 정열 Une fievre brulant"의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WoO 72(179697)
▶살리에리의 오페라 "팔스타프 Falstaff"의 2중창 "바로 그대로 La stessa, la stessissima"의 주제에 의한 10개의 변주곡 WoO 73(1799)
▶빈터의 오페라 "중지된 봉헌제(奉獻祭) Das unterbrochene Opferfest"의 4중창 "아들이여, 조용히 쉬어라 Kind, willst du ruhig schlafen"의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 75(1799) ▶쥐스마이어의 오페라 졸리만 2세, Soliman II에서의 3중창 "장난과 농담 Tandeln und Scherzen"에 의한 8개의 변주곡 WoO 76(1799)
▶창작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WoO 77(1800)
▶창작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op. 34(1802)
▶발레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의 주제에 의한 15개의 변주곡과 푸가(에로이카 변주곡 EroicaVariationen) op. 35(1802)
▶"신이여 왕을 지켜 주소서 God save the King"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 78(1803)
▶"룰 브리타니아 Rule Britania"에 의한 5개의 변주곡 WoO 79(1803)
▶창작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 WoO 80(1806)
▶창작 주제에 의한("아테네의 폐허 Die Ruinen von Athen" 중 터키 행진곡에 의한) 6개의 변주곡 op. 76(1809)
▶디아벨리의 왈츠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op. 120(1823)
▶바가텔, 소나티네, 무곡, 기타 소품
▶론도 WoO 48(1783)
▶론도 WoO 49(1783)
▶미뉴에트 WoO 82(1785경)
▶전주곡 WoO 55(1787경)
▶피아노 또는 오르간을 위한 2개의 전주곡 op. 39(1789)
▶소나티네의 2개의 악장 WoO 50(1790경)
▶미완성의 소나티네 WoO 51(1791~92경)
▶론도 아 카프리치오 Rondo a capriccio(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 Die Wut uber den verlorenen Groschen[D]Le Sou perdu[F]) op. 129(1795경)
▶론도 op. 51[제1번(179697), 제2번(1800)]
▶간주곡바가텔 Intermezzobagatelle WoO 52(1796~98)
▶알레그레토 WoO 53(1796~98)
▶소곡 "유쾌와 비애 Lustigtraurig" WoO 54(1797경)
▶7개의 렌틀러 WoO 11(1798)
▶알르망드 WoO 81(1800)
▶7개의 바가텔 op. 33(1802)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위한 2개의 카덴짜 WoO 58(1802경)
▶안단테 파보리 Andante favori WoO 57(1803~04)
▶바가텔 WoO 56(1804)
▶6개의 에코세즈 WoO 83(1806경)
▶환상곡 op. 77(1809)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 Fur Elise" WoO 59(1810)
▶폴로네즈 op. 89(1814)
▶최후의 악상 WoO 60(1818)
▶2개의 작품[WoO 61(1821), 61a(1825)]
▶11개의 새로운 바가텔 op. 119(1821~22)
▶6개의 바가텔 op. 126(1823~24)
▶왈츠 WoO 84(1824)
▶왈츠 WoO 85(1825)
▶에코세즈 WoO 86(1825)

◇피아노 연탄곡

▶발트슈타인 백작의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WoO 67(1791경)
▶소나타 op. 6(1796~97)
▶가곡 "그대를 생각하며 Ich denke dein"과 6개의 변주곡 WoO 74(1799~1804)
▶3개의 행진곡 op. 45(1802~03)
▶"대 푸가" op. 133의 편곡 op. 134(1826)

[실내악곡, 각종 기악곡]

◇피아노와 바이올린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의 "백작께서 춤을 추신다면 Se vuol ballare"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40(1792~93)
▶론도 WoO 41(1793~94)
▶6개의 알망드 WoO 42(1795~96)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제2번, 제3번 op. 12(1797~98)
▶바이올린 소나타 제4번 op. 23(1800~01)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Fruhling" op. 24(1800~01)
▶바이올린 소나타 제6번, 제7번, 제8번 op. 30(1802)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크로이처 Kreutzer" op. 47(1802~03)
▶바이올린 소나타 제10번 op. 96(1812)

◇피아노와 첼로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 Judas Maccabeus"의 "보아라, 용사는 돌아온다 See, the conquering, hero"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45(1796)
▶첼로 소나타 제1번, 제2번 op. 5(1796)
▶모짜르트의 "마적 Zauberflote"의 "처녀인가 부인인가 Madchen oder Weibchen"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op. 66(1798)
▶모짜르트의 "마적" 중 "사랑을 아는 사나이들은 Bei Mannern"의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 46(1801경)
▶첼로 소나타 제3번 op. 69(1807~08)
▶첼로 소나타 제4번, 제5번 op. 102(1815)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3중주곡

▶피아노3중주곡 WoO 38(1790경)
▶피아노3중주곡 제1번, 제2번, 제3번 op. 1(1794~95)
▶피아노3중주곡 제4번 op. 11(1798)
▶창작 주제에 의한 14개의 변주곡 op. 44(1800)
▶7중주곡 op. 20을 작곡자가 편곡한 3중주곡 op. 38(1803)
▶"교향곡 제2번"에서 작곡자가 편곡한 피아노3중주곡 op. 36bis(1805)
▶피아노3중주곡 제5번 "유령 Geister", 제6번 op. 70(1808)
▶피아노3중주곡 제7번 "대공(大公) Erzherzog" op. 97(1811)
▶피아노3중주곡의 악장 WoO 39(1812)
▶밀러의 징슈필 "프라하의 자매 Die Schwestern von Prag"의 "나는 양복공 카카두 Ich bin der Schneider Kakadu"의 주제에 의한 10개의 변주곡과 론도(1815경)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3중주곡

▶현악3중주곡 제1번 op. 3(1792)
▶세레나데 op. 8(1796~97)
▶현악3중주곡 제2번, 제3번, 제4번 op. 9(1796~98)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4중주곡

▶3개의 피아노4중주곡 WoO 36(1785)
▶5중주곡 op. 16을 작곡자가 편곡한 4중주곡 개정판 op. 16(1796)

◇현악4중주곡

▶현악4중주곡 제1번, 제2번, 제3번, 제4번, 제5번, 제6번 "로프코비츠 Lobkowitz" op. 18(1798~1800)
▶"피아노 소나타 제9번"을 작곡자가 편곡한 개정판 현악4중주곡 op. 141(1801~02)
▶현악4중주곡 제7번부터 제9번 op. 59[라주모프스키 Rasumowsky](1806)
▶현악4중주곡 제10번 "하프 Harfe" op. 74(1809)
▶현악4중주곡 제11번 "콰르테토 세리오소 Quartetto Serioso" op. 95(1810)
▶현악4중주곡 제12번 op. 127(1822~25)
▶현악4중주곡 제15번 op. 132(1825)
▶현악4중주곡 제13번 op. 130(1825~26)
▶대 푸가 Grande Fugue op. 133[본래 현악4중주곡 op. 130의 끝곡으로 작곡](1825)
▶현악4중주곡 제14번 op. 131(1826)
▶현악4중주곡 제16번 op. 135(1826)

◇현악5중주곡

▶현악5중주곡 제1번 op. 4(1795~96)
▶현악5중주곡 제2번 op. 29(1801)
▶현악5중주곡 제3번[피아노3중주곡 제3번 op. 1의 작곡자 및 그밖의 사람들에 의한 편곡] op. 104(1817)
▶5중주 푸가 op. 137(1817)

◇관악기를 포함한 곡

▶피아노, 플루트, 바순을 위한 3중주곡 WoO 37(1786~90)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3개의 2중주곡 WoO 27(1790~92)
▶관악8중주곡 op. 103(1792)
▶관악8중주를 위한 론디노 WoO 25(1792)
▶플루트2중주곡 WoO 26(1792)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2대의 호른을 위한 6중주곡 op. 81b(1794)
▶2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쉬 호른을 위한 3중주곡 op. 87(1794)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op. 25(1795~96)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5중주곡 op. 16(1796)
▶관악6중주곡 op. 71(1796)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 Don Giovanni"의 "자, 그의 손을 La ci derem la mono"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28[2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쉬 호른을 위한](1796~97)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3중주곡 op. 11(1798)
▶현악기와 관악기를 위한 7중주곡 op. 20(1799~1800)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소나타 op. 17(1800)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3중주곡[7중주곡 op. 20을 편곡] op. 38(1803)
▶6개의 관악기를 위한 행진곡 WoO 29(1807경)
▶4대의 트롬본을 위한 3개의 에클레아 WoO 30(1812)
▶피아노와 플루트를 위한 6개의 주제와 변주 op. 105(1817~18)
▶피아노와 플루트를 위한 10개의 주제와 변주 op. 107(1817~18)
▶11개의 빈 무곡 "뫼틀린 춤곡 Modingertanze" WoO 17[현악기와 관악기에 의한 7중주를 위한](1819)

◇그밖의 악기에 의한 실내악곡 및 기악곡

▶오르간을 위한 푸가 WoO 31(1783)
▶2대의 바이올린과 저음 악기를 위한 6개의 미뉴에트 WoO 9(1795경)
▶피아노와 만돌린을 위한 소나티네와 아다지오 WoO 43(1796)
▶피아노와 만돌린을 위한 소나티네와 변주곡 WoO 44(1796)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2중주곡 WoO 32(1795~98경)
▶피리 시계를 위한 5개의 곡 5 stucke fur eine Flotenuhr WoO 33(1799)
▶6개의 렌틀러 WoO 15[2대의 바이올린과 저음 악기를 위한](1802)


[관현악곡]

◇교향곡

▶제1번 op. 21(1799~1800)
▶제2번 op. 36(1801~02)
▶제3번 "영웅 Eroica" op. 55(1802~04)
▶제4번 op. 60(1806)
▶제5번 op. 67(1807~08)
▶제6번 "전원 Pastorale" op. 68(1807~08)
▶제7번 op. 92(1811~12)
▶제8번 op. 93(1812)
▶제9번[합창 딸림] op. 125(1822~24)

◇서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Die Geschopfe des Prometheuse op. 43(1800~01)
▶레오노레 Leonore 제1번 op. 138(1805)
▶레오노레 제2번 op. 72 개정판(1805)
▶레오노레 제3번 op. 72 제3판(1806)
▶코리올란 Coriolan op. 62(1807)
▶에그몬트 Egmont op. 84(1809~10)
▶아테네의 페허 Die Ruinen von Athen op. 113(1811)
▶슈테판 왕 Konig Stephan op. 117(1811)
▶피텔리오 Fidelio op. 72(1814)
▶명명축일 Zur Namensfeier op. 115(1815)
▶헌당식 Die Weihe des Hauses op. 124(1822)

◇발레음악

▶기사 발레를 위한 음악 Musik zu einem Ritterballett WoO 1(1791)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Die Geschopfe des Prometheus op. 43(1800~01)

◇부수음악(합창이 딸린 부수음악은 합창곡을 참조)

▶에그몬트 op. 84(1809~10)
▶쿠프너의 "타르페이아 Tarpeja"를 위한 개선행진곡과 제2막에의 서주 WoO 2(1813)

◇그밖의 작품

▶12개의 미뉴에트 WoO 7(1795)
▶12개의 독일 무곡 WoO 8(1795)
▶6개의 미뉴에트 WoO 10(1795)
▶12개의 미뉴에트 WoO 12(1799)
▶12개의 알르망드 WoO 13(1799~1800경)
▶12개의 콩트르당스 WoO 14(1800~01)
▶12개의 에코세즈[분실] WoO 16(1806경)
▶폴로네즈 WoO 18, WoO 19, WoO 20(1810)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비토리아의 싸움 Wellingtons Sieg, oder Die Schlacht bei Vittoria op. 91(1813)
▶축하 미뉴에트 Gratulations Menuett WoO 3(1822)
▶군대음악을 위한 행진곡, 기타 작품 WoO 22, WoO 23, WoO 24(1809~16)


[협주곡]

▶쳄발로 또는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협주곡 WoO 4(1784)
▶바이올린 협주곡의 단장 WoO 5(1790~92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 15(1798)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 19(1794~95;개작 1798, 1801)
▶피아노 협주곡 제3번 op. 37(1800~02)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 제1번 op. 40(1802)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 제2번 op. 50(1802)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협주곡 op. 56(1803~04)
▶피아노 협주곡 제4번 op. 58(1805~06)
▶바이올린 협주곡 op. 61(1806)
▶피아노 협주곡[바이올린 협주곡 op. 61을 편곡] op. 61 개정판(1807)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Kaiser" op. 73(1809)


[성악곡]

◇오페라

▶레오노레 Leonore[초판](1804~05)
  레오노레[개정판](1806)
▶피델리오 Fidelio[레오노레 제3판] op. 72(1814)

◇오라토리오 및 미사곡

▶올리브 산의 그리스도 Christus am Olberg op. 85(1801~03)
▶미사 C장조 op. 86(1807)
▶장엄 미사곡 D장조 op. 123(1819~23)

◇합창 딸린 부수음악

▶아테네의 폐허 op. 113, op. 114(1811)
▶슈테판 왕 Konig Stephan op. 117(1811)
▶게르마니아 Germania WoO 94[징슈필 좋은 소식 Die gute Nachricht을 위한 피날레의 합창](1814)
▶연합한 왕후(王侯)들에의 합창 Chor auf die verbundeten Fursten WoO 95(1814)
▶레오노라 프로하스카 Leonora Prohaska WoO 96(1815)
▶모든 것은 끝났다 Es ist vollbracht WoO 97[개선문 Les Arcsde triomphe을 위한 피날레의 합창](1815)
▶조용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Meeresstille und gluckliche Fahrt op 112[칸타타](1815)
▶"헌당식"의 합창곡 WoO 98(1822)

◇칸타타 및 그밖의 합창이 딸린 작품

▶요제프 2세 장송 칸타타 Kantate auf den Tob Kaiser Josepfs II WoO 87(1790)
▶레오폴트 2세 대관식 칸타타 Kantate auf die Erhebung Leopolds III WoO 88(1790)
▶푼스 주(酒)의 노래 Punschlied WoO 111[제창 합창](1790경)
▶자유인 Der freie Mann WoO 117[제창 합창](1791~92경)
▶피아노, 관현악, 합창을 위한 "환상곡" op. 80(1808)
▶칸타타 "영광의 순간 Der glorreiche Augenblick" op. 136(1814)
▶맹우(盟友)의 노래 Bundeslied op. 122[독창 2명, 3부 합창, 6개의 관악기를 위한](1822)
▶로프코비츠 칸타타 Lobkowitzkantate WoO 106[소프라노와 3부 합창을 위한](1823)
▶봉헌가(奉獻歌) Opferlied op. 121b(1824)

◇관현악 반주 딸린 콘서트용 아리아와 무대음악

▶키스의 시도 prufung des kussens WoO 89[베이스를 위한](1790경)
▶아가씨들과 사이 좋게 Mit Madeln sich vertragen WoO 90[베이스를 위한](1790경)
▶아아, 불실한 자여! Ah perfido! op. 65[소프라노를 위한](1795~96)
▶"오 이 무슨 인생인가! O welch ein Leben!"[테너를 위한]과 "꽉 끼는 구두가 싫으시다면 Soll ein Schuh nicht drucken" WoO 91[소프라노를 위한](1796)
▶첫사랑 Primo amore WoO 92[소프라노를 위한](1800)
▶아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No, non turbarti WoO 92a[소프라노를 위한](1801~02)
▶"북은 울린다 Die Trommel geruhrt"와 "기쁨과 슬픔으로 가득 차 Freudvoll und leidvoll" op. 84[소프라노를 위한 에그몬트의 부수음악 중 클레르헨의 노래](1809~10)
▶무신앙을 저주하며 Tremate, empi tremate op. 116[소프라노, 레너, 베이스를 위한](1814) ◇가곡과 중창곡(독일어 가사에 의한 것이 80곡 이상, 이탈리아어에 의한 것 약간, 프랑스어 가사로 된 것도 몇 곡 있다)
▶우리만의 세계여행 Urians Reise um die Welt op. 521(1785경)
▶아델라이데 Adelaide op. 46(1795~96)
▶작별 La Partenza WoO 124(1797~98)
▶겔레르트의 시에 의한 6개의 노래 op. 48(1803)
▶우정의 기쁨 Das Gluck der Freundschaft op. 88(1803)
▶희망에 부쳐 An die Hoffnung[2판; op. 32(1805), op. 94(1813)]
▶이 어두운 무덤 속에 In questa tomba oscura WoO 133(1807)
▶먼 나라의 노래 Lied aus der Ferne WoO 137(1809)
▶타향의 젊은이 Der jungling in der Fremde WoO 138(1809)
▶사랑하는 사람 Der Liebende WoO 139(1809)
▶6개의 노래 op. 75[괴테, 할렘, 라이시히의 시에 의한](1809)
▶괴테의 시에 의한 3개의 노래 op. 83[X슬픔 속의 기쁨 Wonne der Wehmut, 동경 Sehnsucht, 물들인 리본으로 Mit einem gemalten Band](1810)
▶전사의 이별 Des Kriegers Abschied WoO 143(1814)
▶비밀 Das Geheimnis WoO 145(1815)
▶아득히 먼 연인에게 부치는 6개의 노래 6 Lieder an die ferne Geliebte op. 98(1816)
▶저녁의 노래 Abendlied WoO 150(1820)

◇그밖의 성악곡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의 민요 편곡이 약 200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반주가 딸린 것(181018)
▶2중, 3중, 4중창곡의 작은 연작이 여러 편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 가사

에 의했으며 피아노 반주가 딸려 있다.
▶기타 카논, 소곡 등

 

...지식인 등에서 펌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별초롱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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