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핑 베토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원을 사모하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영화 이다.
“신께선 어떤 사람 귀엔 속삭이지만 내게는 고함을 치시네. 그래서 귀가 먼 거야”
… 그에게 감정의 지하세계 및 영혼의 중간세계를 꿰뚫어 볼 신비스런 통찰력을 부여하였다. 오히려 질병 덕분에 그는 지고의 예술 경지에 도달한다. (중략)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행복의 그 순간에도 정지하려 들지 않는다. (중략) 이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원하는 어린이인 것 같다.
그의 말이 신앙인의 근본인 겸손함을 무시한 것이라거나 외곬수의 삐뚤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그의 ‘9번 교향곡’을 들은 사람이라면 감히 그렇게 단정할 수 없을 거다.
비록 스크린 속에서였지만, 교향곡의 제4악장이 울려 퍼질 때, 마치 야곱이 본 바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천사’를 본 것만 같았다. 그 때 든 생각이라고는 ‘베토벤은 진정한 천재야’가 아니라 ‘이것이 진정 하늘의 영광이구나’라는 것이었다. 마치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찬송가 구절처럼 말이다.
그 때 깨달았다. 그가 정말로 신의 영역을 잠시나마 맛 본 자라는 것을. 그렇다. 그는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처럼, 열려진 하늘의 문을 통해 하늘의 언어를 훔쳐 내 이 땅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그가 들려 준 하늘의 음악은 인간을 압도하는 것이었고, ‘눈에 보이는 세상, 그 이상이 존재함’을 진심으로 인정케 하는 것이었다. 온 천지의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은, 의외로 ‘세상을 집어 삼킬 것 같은’ 교향곡이 아니라 소박한 소품이었다. 추수감사 예배를 위해 만들었다는 ‘String Quartet No.9 in C major Op.59 No. 3 Rasumovsky’. 이 땅에서 누구보다 영광스럽고 누구보다 고독하게 살았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이 곡은, 한 천재가 자신의 창조주께 겸손함으로 드리는 마지막 고백인 셈이다.
물론 이 영화는 역사적 기록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진실의 힘’은 감독의 해석 그 이상을 보게 한다. 비록 천상의 문은 당신에게 잠깐의 환희만 허락한 후, 다시 굳게 닫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목마른 자들은 여전히 목마를 테지만 말이다.
주 : 각 단락의 삽입 문구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천재와 광기>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출처 : 서은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