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뿌리개 꼭지처럼
- 이정록
물뿌리개 파란 통에
한가득 물을 받으며 생각한다
이렇듯 묵직해져야겠다고
좀 흘러넘쳐도 좋겠다고
지친 꽃나무에
흠뻑 물을 주며 마음먹는다
시나브로 가벼워져야겠다고
텅 비어도 괜찮겠다고
물뿌리개 젖은 통에
다시금 물을 받으며 끄덕인다
물뿌리개 꼭지처럼
고개 숙여 인사해야겠다고
하지만 한겨울
물뿌리개는 얼음 일가에 갇혔다
눈길 손길 걸어 잠그고
주뼛주뼛, 출렁대기만 한 까닭이다
얼음덩이 웅크린 채
어금니 목탁이나 두드리리라
꼭지에 끼인 얼음 뼈,
가장 늦게 녹으리라
-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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