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국화 몇잎
황동규
다 가버리고, 남았구나 손바닥에 오른 마른 국화 몇 잎.
짧은 가을이 갔다. 떨어진 나뭇잎들 땅에 몸 문지르다 가고 흰머리 날리며 언덕까지 따라오던 억새들도 갔다. 그대도 가고 그대 있던 자리에 곧 지워질 가벼운 나비 날갯짓처럼 마른 국화꽃 내음이 남았다.
우리 체온이 어디론가 가지 못하고 끝물 안개처럼 떠도는 골목길에 또 잘못 들어 섰다든가 술집 주모 목소리가 정말 편안해 저녁비 흩뿌리는 도시의 얼굴 그래도 참을 만하다든가 그대에게 무언가 새로 알릴 거리 생기면 나비 날갯짓 같은 이 내음을 통해 하겠네 나비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가서 폭풍을 낳는다고도 하지만 가을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지는 마시게.
Piano Concerto No.5 in Eb major, Op.73"Emperor"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Bruno Walter, Cond / New York Philharmonic
1악장 (Allegro)
2악장 (Adagio un poco moto) Rudolf Serkin, Piano 3악장. Rondo, Allegro
18 세기부터 19 세기초에 걸쳐 유럽은 끊임없이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청소년기를 보낸 본(Bonn)도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그가 22세의 가을부터 5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고 있었던 빈(Wien)도 두 번에 걸쳐 나폴레옹군에 의해 점령되었지요. 베토벤은 처음에는 나폴레옹을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 줄 영웅으로 존경하고 있었으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그 생각을 버리고 나폴레옹과 프랑스인을 마음으로부터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 적개심이 정점에 달했던 것이 나폴레옹군의 두번 째의 빈 점령 때였습니다. 1809년 5월 초 빈이 하루만에 나폴레옹군에 의해 함락되자 베토벤과 가깝게 지내던 귀족들은 모두 빈을 탈출했으나 당찬 성격의 베토벤은 빈을 한걸음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황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이 작곡된 것은 나폴레옹군의 공격을 받아 포성이 빈을 뒤흔들었던 무렵으로 1809년 2월부터 10월에 걸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곡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유달리 남성적이고 스케일이 크고 호탕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것은 그와 같은 사회 정세도 일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곡의 "황제"라는 호칭은 나폴레옹과 결부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나폴레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황제"란 이름은 이 곡의 곡상(曲想)이 장대하고 숭고하며 그 구성이 호화롭고 위풍당당하여 마치 황제의 품격을 연상케 한다는 것과 이 곡의 규모와 내용 모두가 고금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최고라는 뜻으로 후세 사람들이 "황제"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곡의 제1악장의 당당한 시작과 웅혼(雄渾)한 곡의 전개를 들어 보면 "황제"라는 호칭을 느낄 수 있습 니다. 곡은 모두 3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고 호탕한 제1악장에 이어 명상적인 제2악장과 활기찬 제3악장이모두음악적인 맛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서도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었으므로 "피아노 협주곡 제4번"까지는 모두 자신의 연주로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제5번은 그의 제자인 체르니(Carl Czerny)가 피아노를 맡았습니다. 베토벤은 이 무렵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황제" 이전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양식을 확립한 것은 모차르트였다. 특히 마지막 협주곡들에서 보여준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작곡양식은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흐름을 암시하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참신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요절에 의해 피아노 협주곡의 발전은 상당히 지체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변화의 흐름을 베토벤이 이어받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달리 근본적인 "혁신가"였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처음 작곡한 두 곡의 협주곡은 어느 정도 "색깔"이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완전히 모차르트의 영향 속에 있는 작품들이며 3번 C단조의 협주곡에 이르러서야 베토벤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자체가 피아노 협주곡양식 자체의 변화이자 혁신을 의미하고 있다. 젊은 패기를 내세우면서 강한 개성을 나타내었던 3번에 비해 4번 협주곡은 오히려 퇴행한 듯이 보인다. 모차르트의 영향이 다시 엿보인다는 점, 베토벤 특유의 명쾌한 어법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애매한 표정을 취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다소 뒤쳐지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4번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피아노 솔로가 1악장의 서두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고전파의 협주곡에서는 관현악 파트가 주제를 제시하면서 곡을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베토벤의 4번 협주곡에서 처음으로 독주악기의 솔로가 서두를 맡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 작곡된 슈만,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그 등의 유명한 협주곡에서 보이는 서두는 예외 없이 베토벤의 양식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매력 베토벤의 5번째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황제"가 가지고 있는 폴리시는 아주 명확하다. 복잡함, 애매함과는 거리가 먼 극도의 "명쾌함"과 "밝음"이 바로 그것이다. "황제"라는 제목은 그리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영웅"과는 달리 웅대함, 강인함을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1악장과 3악장은 강인한 요소만큼이나 많은 서정성을 가지고 있고 멜로디 라인도 비할 바 없이 밝고 아름답다. 그늘진 부분이라고는 1악장의 제 2주제에서 잠시 비칠 뿐이다. 2악장의 뛰어남도 각별하다. 일반적으로 협주곡의 2악장은 "재미없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보면 안 들으면 그만인 곡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황제"의 2악장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각별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자신의 3번 협주곡에서 대단히 세련된 아름다움을 이미 들려 준 바 있기는 하다). 특히 2악장의 주제를 피아노가 느긋하게 연주하는 부분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쇼팽이나 모차르트의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 조차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황제"의 1, 3악장이 밝고 호쾌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어 단조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2악장의 전개를 살펴보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애절한 기분을 맛볼수있는 것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 (게리 올드만 주연, 버나드 로즈 감독) 마지막 장면에서 창문 너머로 여인이 통곡하는 장면을 소리없이, 2악장의 선율만으로 처리한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차르트의 2번 협주곡 2악장이 구슬프게 들려왔듯이 목관악기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 협주곡의 2악장 선율 또한 가슴이 찡한 아름다움이 있다. 때때로 "과연 황제가 뛰어난 곡인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3번 협주곡과 같은 정열도 없고, "화려한 피아노"라고는 하지만 막상 이 곡의 피아노파트를 뜯어보면 이렇다 할 어려운 기교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피아노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곡의 몇몇 부분을 제외 하고는 큰 어려움 없이 연주해낼 수 있을 정도이며, 관현악파트와 피아노의 정교한 진행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곡이다. 굳이 "베토벤" 이라는 프리미엄을 얹어주지 않더라도 "황제"와 비견할 만한 피아노 협주곡은 그 자신의 3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정도가 아닐까. 복잡한 관현악 기법이 없어도, 난해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 곡은 충분한 화려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선율이 강조되는 부분의 효과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음악들이 지나친 장식으로 인해 난삽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고전주의 협주곡에 쓰인 음표들의 효율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루돌프 대공은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베토벤이 창작생활에 있어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베토벤은 이러한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루돌프 대공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지도해 주었으며 자신의 많은 작품을 대공을 위해 작곡하고 헌정하였다. 이들 곡 중에는 B flat장조의 피아노 소나타 Op.101, "장엄 미사"와 같은 거대한 곡도 포함되어 있으며 피아노트리오 "대공", 피아노 소나타 21, 23, 26번 등의 유명한작품들도 루돌프대공과 연관이 있는 곡들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베토벤을 존경하는 것 만큼이나 루돌프대공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5번" 역시 루돌프대공을 위해 작곡된 대표적인 곡이다. 베토벤은 1809년에 5번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런던과 라이프치히의 출판사 (Clementi-London, Breitkopf & Hartel-Leipzig)에서 출판되었다. 당시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느낄 정도였으며, 결국 이 곡의 초연은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에서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에 의해 이루어졌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연주와 마찬가지로 비인에서의 초연시에도 베토벤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협주곡이 청중 앞에서 연주되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 베토벤이 작곡한 5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스스로 초연하지 못한 곡은 제 5번협주곡 뿐이다. 제 3번 교향곡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작곡된 곡들이 아주 간결한 어법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악화되는 귓병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는데 특히 E flat장조, 혹은 C단조의 간단한 으뜸, 딸림화음을 유니즌으로 효과적인 화성전개를 통해 강한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베토벤 특유의 작곡기법이 극단적으로 잘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작곡시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Op. 81a의 E flat장조 소나타는 베토벤의 세련된 작곡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피아노 협주곡 5번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작곡양식과 효율적인 기법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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