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에토벤 선생님

[스크랩] Beethoven Symphony No 9 op.125 합창, Furtwängler, BPO, 1942년 4월 19일

schubert 2013. 1. 4. 14:15





 

          


Beethoven Symphony No 9 op.125 합창

Furtwängler,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March 1942 (혹은 Apral 19, 1942)

Bruno Kittel Choir


1.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2. Scherzo: Molto vivace-Presto

3. Adagio molto e cantabile-Andante Moderato-Adagio

4. Recitative: (Presto-Adagio cantabile-Allegro assai-Presto: O Freunde)


 




Tilla Briem, soprano
Elisabeth Höngen, alto
Peter Anders, tenor
Rudolf Watzke, bass






푸르트벵글러가 남긴 합창 교향곡중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음반이다.
바로 1942년 4월 19일 히틀러의 생일 전야제 실황음반 일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의견 때문.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이 음반의 4악장 피날레 부분에 괴헬스와 전쟁에서 다친 나치 장교의 모습도 보인다.
어지러웠던 한 시대에 위대한 예술가가 광기의 시대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공연이다.






지금은 폐간된 '레코드리뷰' 라는 잡지에는 러시아 국영 음반사 멜로디아(Melodiya)가 90년대 초반 발매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의 2차대전 시기 녹음(1942-45)의 CD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다.
CD에 대한 평 외에는 독일 제국 방송국(RRG)이 테이프를 실황 공연 녹음에 쓰게 된 경위, 푸르트벵글러와 나치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지금 봐서는 저 기사가 너무 '푸르트벵글러 감싸안기' 라고 보여지고 있는데, '이 CD들은 푸르트벵글러가 나치스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는 대목에서는 정말로 실소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필자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그 기사는, 한국 (혹은 일본일 수도 있다)의 그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순수음악가는 잘못이 없어' 라는 헛소리를 활자화한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치스의 국영 방송국에 의해 녹음된 푸르트벵글러의 전시 녹음들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본인 포함-의 혼을 빼놓고 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긴장감과 긴박감이 AM 라디오 수준의 음질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재발매 CD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녹음의 출처에 대해서는 원문에 '관련 사이트' 를 링크시켰지만, 사이트에서 내용 자체를 없애버려 지금은 볼 수 없다.
다만, 일본의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도는 이야기로는 RRG의 누군가가 당시 상용되던 마그네토폰에 녹음을 한 뒤, 이를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아세테이트반으로 옮겨 놓은 것이 음원일 것이라고 한다.
이 아세테이트반 세트는 빈(Wien)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Archipel이 CD로 복각하면서 상태가 안좋은 몇몇 부분을 3월 녹음으로 땜질했다는 주장도 있다.
음원의 소재 자체를 음반사 측에서 명확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들이 난무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발매된 푸르트벵글러의 교향곡 9번 녹음은 모두 열 종류로, 이 중 '전시 녹음' 에 포함되는 것은 1942년 3월 22-24일의 실황이다.
이 연주회는 합창을 맡은 브루노 키텔 합창단의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이었는데, 4악장에서 베이스 독창자가 선창하는 부분 직전에 갑자기 다른 테이프를 이어붙인 듯한 부분이 있어서 지금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많은 푸르트벵글러 애호가들은 4악장 전반부가 3월의 녹음이고, 후반부가 문제의 '히틀러 생일 전야제' 의 녹음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녹음 전체가 모두 4월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기도 하다.
일단 대세는 3월의 것이라는 주장이 많고, 독창자들의 목소리도 3월 공연의 것이 확실한 것 같다. (특히 테너 독창자 페터 안더스의 금속성 목소리는 확실히 3월의 것임을 입증한다고 본다.)
문제의 '히틀러 생일 전야제' 는 3월 연주 후인 4월 19일의 연주회인데, 푸르트벵글러는 이 연주회를 지휘하면 그야말로 전세계에 '나치스의 나팔수' 임을 표방하게 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이 아프다는둥, 다른 곳의 연주회 스케줄이 잡혀 있다는둥 하면서 이 연주회의 지휘를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지휘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연주회는 당시 독일 점령지와 동맹국의 모든 방송국에서 실황으로 중계되었으며, 미국이나 영국 등의 반나치스 성향 음악인들은 이로서 '푸르트벵글러=나치스' 라는 공식을 만들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실황이 과연 녹음으로 남겨져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터였다.






새로 발굴된 자료는 독일 제국 방송국의 당시 실황을 누군가가 사적인 목적으로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테이프 레코더는 무게가 무려 200kg이나 되었고, 값도 무척 비싸서 방송용 등 공적인 목적으로만 쓰였다.
이 시기 동안의 '사적인 녹음' 은 대부분 소형 아세테이트반 녹음기를 라디오 스피커에 갖다대고 녹음한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녹음들은 음질도 무척 안좋고, 아세테이트반도 기껏해야 한 면당 4분밖에 녹음할 수 없었으므로 새 아세테이트를 갈아 끼우는 동안의 방송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대표적으로 1941년의 브루크너 교향곡 4번과 7번 단편들-.
하지만 이 녹음은 사적인 녹음인데도 불구하고 교향곡 전곡은 물론이고, 방송 후반부의 아나운서 멘트까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녹음에 쓰인 아세테이트반은 모두 일곱 장(14면)으로, 이 아세테이트반들을 복각한 CD가 Archipel이라는 음반사에서 10월 11일에 나온다는 것이다.
음반사 측은 아세테이트반 전부를 CD에 담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나운서 멘트도 당연히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일단 일본의 몇몇 푸르트벵글러 애호가들이 '시작반' 을 입수해 들은 결과, 3월의 녹음과는 다른 것이며 아세테이트반 특유의 지글거리는 잡음이 들린다고 한다.
물론 음반사의 복각 능력과 원반의 상태 등으로 일부 대목에서 3월 녹음이 땜빵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만약 이번에 발매될 CD가 정말 히틀러 생일 전야제의 녹음이라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또 하나의 '역사의 기록' 이 될 것 같다.
또 '푸르트벵글러는 친나치스였는가, 반나치스였는가' 라는 해묵은 논쟁도 다시 고개를 들고, '음악가는 정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다시금 이슈가 될 것 같다.
<해설 : 이영록의 음악 페이지 중 푸르트벵글러의 제 3제국 시대>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교향곡으로 Beethoven symphony No.9 합창교향곡을 꼽는다.
이 합창 교향곡의 명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Furtwanger의 음반을 꼽는다.
그런데 Furtwanger는 10개도 넘는 녹음을 남겼다는 사실...또 대부분이 음질이 좋지 않다.
그 중에 대표적인 3개를 꼽으라면





Furtwangler/BPO 1942, Bruno Kittel Choir
(Tilla Briem, Elisabeth Hongen, Peter Anders, and Rudolph Watzke)





 

Furtwangler/ Bayreuth Festival Orchestra & Chorus 1951
(Schwarzkopf, Hongen, Hopf, & Edelmann) (EMI GROC)





Furtwangler/Philharmonia 1954, Lucerne Festival Chorus,
(Schwarzkopf, Elsa Cavelti, Ernst Haefliger, Edelmann)

를 꼽는다.
이 중 1942년 녹음은 가장 dyanamic한 녹음으로 꼽히며 1954년 녹음은 말년의 Furtwangler가 조금 성질을 죽이고 내면적인 면을 더 강조하며 음질이 그 중에서 제일 낫다고 인정되는 녹음이다.
1951년 녹음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최고로 꼽고 있는 음반이며 EMI에서 발매되었다.
전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며 가장 환희에 찬 4악장을 들려주며 3악장의 horn의 실수도 유명한 녹음이다. (GROC series)
그러나 사실 이 녹음은 실제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 녹음된 것이 아니고 그 전의 리허설 녹음이라고 한다.
즉 실제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있는 Orfeo의 복원이 바로 1951년 진정한 바이로이트 실황녹음이다.
전체적으로 연주는 EMI의 녹음과 거의 유사하지만 좀 더 음질이 좋아져서 orchestra의 음상이 정확하며 합창단과 orchestra의 조화도 조금은 더 나은 느낌이다.






Wilhelm Furtwangler
푸르트벵글러는 1886년 1월 25일 베를린에서 베를린대학의 고고학 교수 아돌프 푸르트벵글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어린 빌헬름을 그리스나 이탈리아 여행에 데리고 다니며 유럽의 여러 예술을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유럽문명이 도달할 수 있었던 교양을 두루 갖춘 지식인이기도 했다.
1915년 29세의 나이로 만하임 오페라와 만하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5년 동안 활동하며 지휘자로서의 자기 주관을 확립해가기 시작한다.
1922년 1월 23일 당시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였던 니키쉬가 죽게되자 푸르트벵글러는 이 거장의 서거를 추모하는 그해 2월 9일의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과 브람스의 <4개의 엄숙한 노래>를 베를린 필과 연주하게 된다.
이 공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베를린 필은 만장일치로 푸르트벵글러를 지지한다.
그는 이후 오랫동안 베를린 필의 제왕이었고, 베를린 필의 제왕은 유럽, 전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이 되는 전통 역시 그가 만든 것이다.
히틀러는 순수 아리안계 혈통의 세계적 거장인 푸르트벵글러의 정치적 선전효과에 주목해 그를 프로이센 추밀원 고문으로 임명한다.
푸르트벵글러가 오늘날까지 나치의 추종자로 낙인찍히게 된 계기는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시대는 그에게 조국과 음악 중 어느 한 가지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아르투르 토스카니니가 과감하게 뭇솔리니의 파시즘이 지배하는 이탈리아를 버릴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해 푸르트벵글러는 조국 독일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거기엔 어쩌면 이 두 지휘자의 출신 성분이 작용했을 지도 모르겠다.
토스카니니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거의 독학하다시피 쥐휘자로 입문한 것과 비교해서 푸르트벵글러는 독일의 최상류층 출신이라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푸르트벵글러의 조국은 그에게 토스카니니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그 자신도 훗날 "나치 통치하의 독일보다 베토벤의 음악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어디있겠는가?"라며 나치의 억압된 체제와 전쟁의 공포 속에 시달리는 자신의 동포들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베를린에서 히틀러 탄생 축하 연주를 지휘해야만 했고, 폭격 속에서도 베를린 필과 연주를 계속했다.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그는 나치 동조자로 지목되어 지휘봉을 잡을 수 없었다. 1951년 바이로이트 축제가 다시 재개되면서 전쟁의 상처가 아직 여기저기 그대로 나뒹굴던 당시 푸르트벵글러는 개막 공연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선택한다.
패전의 상처와 대학살의 범죄자로 낙인찍힌 독일국민들에게 그는 전인류에 대한 사랑과 화합을 노래한 <환희의 송가>를 통해 다시 한 번 희망과 삶의 보람을 일깨줘주는 명연을 들려준다.
이 명연이 이 음반이다.

이외에도 그의 연주 중 명반으로 손 꼽히는 연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몇 년도 녹음이냐에 따라 그의 해석 방식도 달라진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 특히 3번 ‘영웅’ (52년), 5번 ‘운명’(54년), 6번 ‘전원’(52년), 7번(50년) 등 EMI 스튜디오 레코딩과 푸르트벵글러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라이브 레코딩인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의 3번(44년)과 5번 (47년), 그리고 EMI 레이블의 유명한 바이로이트 실황 9번 ‘합창’ (52년) 등이 그것이다.
한편 슈만의 교향곡 4번(DG, 51년), 브람스의 교향곡 1번(DG, 52년), 3번(EMI, 49년), 4번(EMI, 48년) 등도 명반이다.

<해설 : 웹에서 검색후 재편집>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트로피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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