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

[스크랩] Am I too loud? - Speech by Gerald Moore│잘 살아보세...

schubert 2009. 3. 8. 01:54

Am I too loud? - Speech by Gerald Moore
A Tribute to Gerald Moore (EMI Classics 2003)
Gerald Moore (Jul. 1899 - Mar. 1987)
CD 2 - No.3 - Speech by Gerald Moore
 
3. Speech by Gerald Moore (February 20, 1967)
4. An die Musik ("Du holde Kunst..."), song for voice & piano, D. 547 (Op. 88/4) (2003 Digital Remaster) Gerald Moore
     
Gerald Moore [ Am I too loud? ]
◀ Gerald Moore (Photo; EMI)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조역이나 단역으로 평생을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무대인으로 생활해야 하는 기악 연주자라면 화려한 독주자를 처음에 동경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역에게 조명이 비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역들과 잘 어울리면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하는 사람이 없다면, 주역들의 기량도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는 법이다.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없이 제대로 된 협주곡을 기대할 수 없듯이, 가수의 리사이틀에서 호흡을 잘 맞춰 주는 예민한 반주자 없이 훌륭한 리사이틀을 들을 수 없음을 경험 있는 감상자는 누구나 안다. 하지만, 반주자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의외로 오래지 않다. 그것도, 한 겸손하면서도 탁월한 예술가가 없었다면 훨씬 늦었을 게다. 자신의 은퇴 무대에서 "Am I too loud?"라 말해 관객을 폭소시키던 인물, 그는 바로 제럴드 마틴 무어(Gerald Martin Moore)다.
그는 영국 워트포드(Watford) 태생이다. 그 지역 음악원에서 배운 후 일가가 14세 때 캐나다로 이주했기 때문에 따라가서 마이클 햄버그(Michael Hambourg)에게 배웠다. 그가 자신의 아들인, 유명한 마크 햄버그(Mark Hambourg)에게 제럴드를 소개했으며, 제럴드는 20세 때 영국으로 돌아와 마크 햄버그에게 사사했다. 캐나다에서는 독주와 반주 양편으로 출연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독주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으며, 영국에서 마크 햄버그에게 배운 후 독주로 나갈 결심을 했는데, 그의 마음을 돌린 사람은 Sir 서품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지휘자며, 피아니스트와 지휘 양쪽에서 탁월한 반주자였던 랜던 로널드(Landon Ronald)였다.
영국의 테너 존 코우츠(John Coates)의 반주를 1926년부터 5년간 맡은 뒤, 표도르 샬리아핀, 존 맥코맥(John McCormack), 알렉산더 키프니스(Alexander Kipnis), 매기 테이트(Maggie Tate), 엘레나 게르하르트(Elena Gerhard), 엘리자베트 슈만(Elisabeth Schumann), 페리어, 플라그슈타트, 호터, 티토 고비(Tito Gobbi), 제프리트, 슈바르츠코프, 피셔-디스카우, 프라이, 루드비히, 데 로스 앙헬레스, 자네트 베이커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부분의 유명 성악가들과 공연한 외에, 카잘스, 미샤 엘만, 가스파르 카사도(Gaspar Cassado), 라이오넬 테티스(Lionel Tettis), 메뉴힌, 윌리엄 프림로즈(William Primrose), 포이어만, 푸르니에, 슈타커, 데니스 브레인, 뒤 프레 등 기악 주자와도 연주하여 파트너를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다. 무어가 어느 젊은 예술가와 새로 리사이틀을 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별이 떠오르는군"이라 말했다고 한다. 1967년 로열 페스티벌 홀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에도 1973년까지 프라이 및 피셔-디스카우와 녹음을 했으며, '반주자의 발언' 등 반주에 대한 저작도 몇 있다.
그가 얼마나 적응력이 뛰어난 예술가였는지는, 그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찬사 뿐 아니라 레코드로 남은 곡들을 보아도 명백하다. 물론 반주자가 자기 마음대로 곡을 고를 수는 없기에, 많은 연주가와 공연하면 다양하고 잡다하기까지 한 곡들을 다루게 되지만, 무어의 경우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양과 질에서 핵심적이라 할 독일 리트는 물론이고, 크리스토프와 러시아 가곡, 테이트와 드뷔시 가곡, 고비와 공연한 이탈리아 민요, 데 로스 앙헬레스와 연주한 스페인 레파토리 등에다가 기악 반주까지 합하면, 정말 그에게는 연주할 수 없는 반주 레파토리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쓴 반주에 관한 저서의 일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중 13번 '나의 그림자' 부분이다. 처음, 시의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피아노의 'F#-A-G-F#' 음형이 울리는데, 무어는 이 짦은 음형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가사의 내용과 연관하여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그가 얼마나 섬세한 예술가였는지는 현재 Testament로 구할 수 있는 'The unashamed accompanist'에서도 알 수 있다. 슈베르트 등을 자신이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설명하는데, 유머도 곁들인 그의 유창하고 재미있는 화법은 그가 어떻게 그리도 많은 예술가들과 공연할 수 있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데 로스 앙헬레스는 "그는 내 최고의 반주자였습니다. 내가 기분이 저조한 채 있도록 절대로 내버려 둔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유명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고 다투어 그와 공연하기 원하게 만들었다던 무어의 매력을 알 수 있다.
그의 레코드 전 목록을 나열하기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도 벅찬 과업이다. 1920년대에 HMV와 계약한 후, 1973년 피셔-디스카우와 슈베르트 가곡 전집을 완성할 때까지 그는 반세기 동안 마이크로폰 앞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몇 개를 꼽기는 대단히 어렵다. 우선, 반주자의 숙명으로 인해 무어에게 촛점을 둔 레코드는 일반 반주 레코드에 비해 훨씬 적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무어는 이 분야의 개척자인 만큼 그런 레코드가 있다. 바로 1967년의 은퇴 연주회 실황인 'Tribute to Gerald Moore'다(EMI). 원래 월터 레그가 기획하여 슈바르츠코프, 피셔-디스카우, 데 로스 앙헬레스를 출연시킨 이 실황 녹음은 최근에야 그 날의 전체 연주 곡목을 담아 2CD set으로 제대로 발매되었는데, 성악가의 리사이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권해 볼 만 하다. 아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곡은 '고양이 2중창'일 것이다. 자신의 짧은 말에 이어 슈베르트 'An die Musik'을 피아노 독주로 편곡하여 연주하는데, 50년을 반주라는 음악의 한 분야에 공헌한 그의 업적을 돌이켜 볼 때 경외감을 억누를 수 없다. 2LP를 2CD로 옮길 때의 여백에는 보너스로 성악가 외에 메뉴힌, 레온 구센스, 뒤 프레 등 기악 연주자들을 반주한 녹음과, 4손 피아노로 바렌보임과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을 연주한 것도 들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The unashamed accompanist'도 재미있는 기록인데, 보너스로 무어가 노래하고 데 로스 앙헬레스가 반주를 맡은 슈만의 '시인의 사랑'중 'Ich grolle nicht'가 들어갔다. 들어 본 사람 얘기에 따르면 완~존히 길거리 아저씨 목소리라고 한다. 지금까지, 무어 외의 어떤 반주자가 이런 '독집' 음반을 몇 개나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런 '독집' 외에 그의 본령이라 할 리트 반주 음반으로는, 거장 피셔-디스카우를 받쳐 준 음반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노랄 시대부터 시작하여 수없이 많으므로 부득불 선별해야만 하는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1966~72년의 녹음인 3권의 슈베르트 가곡 전집(DG)이다. 3대 가곡집의 모노랄과 스테레오 녹음(EMI)이나 유명 곡들의 발췌 녹음들(EMI) 보다는, DG 쪽이 체계적으로 구하기 쉽고 저렴하다. 가곡의 팬이라면 특히 3대 가곡집이 든 3권(낱장 또는 3장 세트로 구할 수 있다)은 필수며, 몇 가지로 발췌가 있으므로 아무리 버짓이래도 21장을 한 번에 사기 망설이는 분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도 있다. DG에는 녹음이 하나 더 있는데, 지금 originals 시리즈로 나와 있는, 슈바르츠코프와 피셔-디스카우의 반주를 맡은 볼프 '스페인 가곡집'이 유명하다. EMI의 다른 녹음은 슈만 '아이헨도르프 가곡집', 볼프 '뫼리케 가곡집', 브람스 가곡들, R.슈트라우스 전집 등이 있다.
그 이외에는 거의 EMI의 녹음인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슈바르츠코프와 호터를 받쳐 준 녹음들이다. 호터의 '겨울 여행'과 '백조의 노래'는 피셔-디스카우의 녹음과 아울러 꼭 추천하고 싶은 걸작이며, 브람스 가곡집과 볼프 가곡집, 아쉽게도 부분적으로만 스테레오로 나온 독일 가곡 선집도 매력적이다. 슈바르츠코프를 반주한 녹음의 양은 피셔-디스카우 다음으로 많은데, 피셔-디스카우도 가담한 볼프 '이탈리아 가곡집'과 브람스 '독일 민요집'을 위시해서 '괴테 가곡집', '여성을 위한 가곡집', '이탈리아 가곡집'중 여성용 가곡의 구녹음, 'Song book' 1~4집, 제프리트도 참가한 듀엣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 프라이와 베토벤 가곡집(EMI), '백조의 노래'(Philips), 볼프 등(Decca), 루드비히와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 데 로스 앙헬레스와 리사이틀 및 피셔-디스카우도 참가한 듀엣, 제프리트와 모차르트 가곡집, 로텐베르거와 리사이틀, 베이커와 프랑스 가곡집, 슈만의 슈베르트 가곡, 크리스토프와 무소르그스키 가곡, 테이트와 드뷔시 가곡, 플라그슈타트와 바그너 등(전부 EMI)이 유명하며, 기악 반주로는 메뉴힌과 멘델스존 소나타와 '악마의 트릴' 등을 포함한 리사이틀, 포이어만과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토르틀리에와 드뷔시 소나타, 푸르니에와 'Cello Encores', 'Cellist's Hour'의 2장(모두 EMI)이 있다. 푸르니에와 한 독집은 LP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인기 있는 음반인데, 지금은 다행히 Introuvable 시리즈 중에 대부분이 들어가서 CD로 들을 수 있다.
나처럼 1920년대의 음반도 가끔 사 보는 사람이라면, 독주자의 리사이틀 앨범에서 'with piano accompaniment'라고만 표기된 경우를 상당히 볼 수 있다. 반주자에 대한 인식이 겨우 그 정도, 익명이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알렉산더 키프니스는 자신의 독집이 나왔을 때 반주를 맡은 제럴드 무어의 이름도 같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품위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주자의 위치를 지금 정도로 혼자 확립한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뒤를 이은 제 2세대 전문 반주자들, 에릭 베르바(Erik Werba), 제프리 파슨즈(Geoffrey Parsons), 어윈 게이지(Irwin Gage) 등의 등장도 무어가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서구 유명 음대의 피아노과에는 모두 반주 과정이 있으며, 배우는 것도 매우 많고 힘들다고 한다. 물론 무어 없이도 시대의 흐름 상 누군가는 반주의 중요성을 인식했겠지만, 훨씬 늦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가장 자주 공연했던 파트너 중 하나인 피셔-디스카우가 그 탁월한 솜씨로 독일 리트의 인식을 세계화했다는 평가를 받듯이, 무어는 "피아노에 앉은 사람이 그 날의 연주회를 성공시키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을 현실로 보여 준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Links & Resources
   1. Allmusic.com
   2. Photos ; my records, Amazon, Universal online, etc.
   3. Mr. TAKAHASHI Arato ; The LP image of the recital with Pierre Fournier 'The Cellist's Hour' (Columbia 33CX 1606)
     
[백지연의 SBS전망대] 슬픔에서 우러나온 것만이 세상에 기쁨을 준다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부쳐"
1967년 2월 20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있었던 제럴드 무어 고별 연주회 실황 음반
오늘 들려주실 곡은 어떤 곡인가요?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부쳐”를 제럴드 무어의 피아노 독주로 준비했습니다.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노래라 기억되는데요.
그렇습니다. “음악에 부쳐”는 슈베르트가 20살 때 작곡한 곡인데요, 이 곡의 가사를 쓴 슈베르트의 친구 프란츠 폰 슈버는 슈베르트의 열혈 팬들로부터 예수를 십자가에 넘겨 준 빌라도만큼이나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가 순진한 슈베르트를 꼬드겨 홍등가를 들락거리지 않았다면 슈베르트가 19세기의 에이즈에 다름 아닌 매독에 걸려 31살이라는 창창한 나이에 요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거죠.
슈베르트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네. 슈베르트는 평생 자기 피아노를 가져보지 못한 가난하기 짝이 없는 음악가였고, 수줍음이 많아서 짝사랑한 여인에게 고백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더 큰 불행은 당대 그 누구도 슈베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음악적 성공에 목숨을 걸지 않았던 슈베르트는 친구들의 인정으로 만족했습니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모든 곡이 슬픔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슬픔에서 우러나온 것만이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 가곡을 피아노 솔로로 준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평생 반주만을 고집했던 제럴드 무어란 피아니스트 때문입니다. 불과 80년 전인데, 러시아를 대표하던 키프니스란 성악가는 자신의 음반에 반주자 제럴드 무어의 이름이 인쇄되자 자기 품위와 명성이 손상되었다며 노발대발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반주자는 음악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연주회 포스터나 팸플릿에서 반주자는 익명으로 처리되었지요. 제럴드 무어는 이런 편견과 평생을 싸웠습니다. 그런 결과 20세기를 풍미했던 파블로 카잘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자크린 뒤 프레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등등의 수많은 연주가들이 제럴드 무어와 호흡을 맞춘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빛나는 조연’이 탄생한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1967년 2월 20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있었던 제럴드 무어의 고별
연주회는 감동의 무대였습니다. 무어는 그 공연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아노 솔로를 했는데요, 놀랍게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나 쇼팽의 위대한 소나타가 아니라 연주시간이 1분 30초를 조금 넘는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붙여”를 골랐던 겁니다.사실 이 곡은 체르니 30번의 5-6번 정도, 그러니까 피아노의 기초과정을 마스터했다면누구라도 연주할 수 있을만큼 쉬운 곡입니다. 그런데 평생 단 한 번인 고별공연에서 제럴드 무어는 그 쉬운 곡으로 자신의 음악 인생을 정리했던 것입니다.    
제럴드 무어는 왜 “음악에 부쳐”를 앙코르곡으로 선택했나요?
이 노래는 삶이 위기에 빠졌던 우울한 시간에, 음악이 가슴에 따스한 사랑에 불을 지펴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다 주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사랑스런 음악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제럴드 무어는 이 짧고 단순한 노래에 자신의 음악 평생에 대한
감사를 담았지요. 지난 주간의 고소영 정부니 강부자 내각이니 하는 이명박 정부의 각료인선 파동을 보면서, 평생에 걸쳐 조연의 소중함을 함성이 아니라 소박한 노래에 담아냈던 제럴드 무어가 그리웠습니다.
     
- 제럴드 무어의 고별사 -
1967년 2월 20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있었던 제럴드 무어 고별 연주회 실황 음반 23번 트랙
좀 앉아주세요...(웃음)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오늘밤 제가 반주자로서의 전통적인 태도인 조심성을 잃어버리고 피아노를 친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저는 '내 소리가 너무 큰 건가?'하고 번번히 생각해 왔었거든요.(웃음)
아시다시피 이렇게 위대한 세 명의 가수들이 같은 연주회에서 같은 무대에 같은 시간에 서있는 이 순간은 저에게 커다란 긍지이며 영광입니다.(박수) 사실 저 세 명의 가수가 같은 시간에 같은 대륙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 놀라운 일이지요.(웃음)
그것을 잘 아는 저로서는 저 분들이 저에 대한 애정 때문에 오늘밤 이곳에 흔쾌히 와주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땅히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박수)
그리고 네 번째의 또 다른 사람이 있는데, 오늘 무대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무대 뒤의 실력자로서 저와 40년 동안 한배를 탔던 사람입니다. 오늘밤의 이 콘서트를 착안했고, 이를 성사시키려고 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오늘의 프로그램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저는 마땅히 월터 레그라는 그 이름을 여러분께 말해야겠습니다.(박수)
또한 저는 저희가 무대에 서 있던 연주회 내내 저희에게 다정한 호의를 보여주신 청중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건대, 오늘 이 좋은 분위기는 오랜 시간동안 여러분들로부터 제가 느껴 왔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늘 저에게 보여줬던 그 관대함과 호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그 호의 중에 한가지 못마땅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엘리자베트를 보려고 무대 뒤로 왔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또 위대한 빅토리아를 보러 왔었으며, 또 수많은 인파가 위대한 디트리히를 보려고 왔었죠.. 그리곤 몇 안 되는 사람들이(폭소).. 저를 보려고..., 뭐, 그 중에는 절 보려고 온 사람도 아마 몇은 될 거라고 말하고 싶던 참이었습니다.(웃음)
어쨌든 청중들이 아티스트들의 대기실 근처로 오시지 말기를 여러분께 부탁드리며, 이 홀의 매니저와 스탭들에게도 청중들께 그렇게 부탁드려 주십사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자꾸 그렇게 하시면 오늘밤 이곳에 와 우리에게 이처럼 기막히게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우리에게 이토록 큰 즐거움을 선사한 이 빛나는 가수들이 오늘밤이 새도록 이 홀에 붙잡혀 있다가... 결국에는 집에 가는 마지막 버스를 진짜 놓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웃음, 박수)
끝으로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그리고 월터 레그.. 이 네 사람을 대신하여, 오늘의 이 멋진 밤을 만들어주신 여러분께 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여러분을 향한 작별인사와 제 감사의 마음을 바로 이렇게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한영석 옮김, 출처: 고클래식 goclassic.co.kr)
그리고 제럴드 무어는 피아노에 앉아서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쳐"를 연주했습니다.
     
Speech by Gerald Moore
Please be seated.
Ladies and gentlemen, I'm afraid I haven't acted tonight in the modest way which is traditional for the accompanist. In fact, from time to time, I've had to ask myself the question: 'Am I too loud?'
But you know, of course it's a moment of great pride for me that these three great singers should all appear on the same programme, on the same platform, at the same time. It's even a remarkable fact to find them all at the same time on the same continent as a matter of fact! But of course I feel deeply the honour they've done me because I know they came and appeared here tonight out of affection for me.
Now, there's a fourth person who has not appeared on the stage but who is very much a power behind the scenes. And this is a man with whom I've been associated for 40 years. He conceived the idea of this concert, he laboured mightily to organise it and he devised the programme. And, of course, I'm referring to Walter Legge.
And now I must thank you, because all through the concert we up here on the stage have felt goodwill welling up towards us. And it's goodwill which, I must say, I have experienced for you for many years. And I'm deeply grateful to you all for the indulgence you've always shown me.
But I have one more claim to make on your indulgence. It is this. There are hundreds and hundreds of people who will want to come backstage and see and greet Elisabeth, there are hundreds of people who will want to come and greet Victoria, there are hundreds of people who will want to come and greet Dietrich, there even may be a few people... I was going to say, there may be a few people who want to see the back of me!
But I must beg you, and I'm asked by the management and by the staff of this hall to beg you, not to come round to the artist's room, because if you did, these glorious singers who've been here this evening and have sung so marvellously and given us such enormous pleasure, they would be here till all hours of the night and, in fact, they would miss their last buses home.
So, on behalf of all those four people - Elisabeth Schwarzkopf, Victoria de los Angeles, Dietrich Fischer-Dieskau and Walter Legge - I thank you from the very bottom of my heart for the wonderful evening you have given us, and I would like to say goodbye and express my thanks to you in this way...
Writer profile
책과 클래식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부당한 차별을 가장 못 견뎌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를 창립, 사무국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요셉의 회상>, <안티 혹은 마이너>, <장기려, 그 사람>이 있다.
출처 : 대나무숲 지강유철 2008/03/05
     
클래식 오딧세이 중에서
<음악에 부쳐>는 슈베르트의 가곡 중에서도 비교적 단순한 곡에 속한다. 피아노 반주도 간단하고 노래의 멜로디 역시 단순하다. 같은 멜로디를 가사만 달리 해서 두 번 반복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렇게 같은 멜로디를 가사만 달리해서 부르는 것을 장절 형식의 노래라고 한다. 이런 형식으로 된 노래들은 대개 음악적 구조와 멜로디가 단순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성을 자랑하는 슈베르트의 가곡에는 이런 형식의 노래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음악에 부쳐>가 바로 이렇게 쉬운(?) 노래에 속한다. 이런 외형적인 단순함 때문에 이 노래는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 Ich liebe dich>와 더불어 음악성은 없으나 클래식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감히 한번 불러보려고 넘보는 독일가곡 레파토리 중의 하나이다.
바로 그 외형적인 단순함 때문에 나는 처음에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슈베르트 가곡 중에는 수준 높은 시적, 음악적 감성으로 충만한 곡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곡에 비해 <음악에 부쳐>는 그야말로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화음만을 두드리는 그 피아노 반주의 단순함이라니. 슈베르트 가곡은 피아노와 노래의 2중주라고 할 만큼 피아노 파트가 음악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노래의 반주는 성악 파트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그저 반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음악성 없는 초보자들이 감히 한 번 불러 보겠다고 넘볼 정도로 그렇게 쉬운 노래. 이렇게 쉬운 노래가 그 단순함 속에 내면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67년에 있었던 피아니스트 제랄드 무어의 고별 연주회 실황음반을 듣고 나서였다.
◀ 왼쪽 그림은 피셔 디스카우가 그린 제랄드 무어이고, 오른쪽 그림은 피셔 디스카우의 자화상이다. 피셔 디스카우는 그림도 그렸다.
제랄드 무어. 평생 가곡 반주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음반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지금도 음악방송을 틀면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 제랄드 무어의 피아노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수도 없이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디스카우의 이름 뒤에는 늘 제랄드 무어라는 이름이 따라 붙는다. 은퇴한지 30년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가곡 반주의 제왕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사람. 그가 바로 제랄드 무어다.
이런 제랄드 무어가 지난 67년 은퇴를 했다. 그의 고별 연주회에는 평생의 파트너였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를 비롯해서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가 참석했다. 그런데 이 연주회의 마지막에 제랄드 무어가 피아노로 바로 이 <음악에 부쳐>를 연주한 것이다. 그때 제랄드 무어의 육성과 함께 마지막 연주로 듣는 <음악에 부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내 가슴에 다가왔다. 그것은 음악과 예술에 대한 고결한 찬가였다. 평생을 음악과 더불어 살아온 자신의 음악인생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이보다 더 적절한 고별곡이 또 있을까.
그대 아름다운 예술이여.
나는 그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 아름다운 예술이여.
나는 그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노래의 주제는 마지막의 이 가사에 함축되어 있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같은 가사를 두 번 반복해 부르도록 되어 있는데, 처음 것과 그 다음 것의 음악적 의미가 서로 다르다. 처음 멜로디가 예술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며 클라이막스에 이른 후, 이어지는 멜로디는 조용히 같은 가사로 그 시적 의미를 마무리짓는다.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피아노 후주가 나와 노래에 여운을 남기고 있는데, 단순하지만 내면의 깊이를 가진 그런 여운이다.
제랄드 무어의 음반을 들으며 이렇게 평생을 음악 속에 살다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쳐>로 자신의 음악인생을 정리하는 삶은 또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는 재능의 부족이나 사회적 편견, 혹은 그밖의 이유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촬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