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스크랩] 89년 빈필신년음악회 중에서..... / Carlos Kleiber & Wien Philharmonic

schubert 2009. 1. 2. 22:32

89년 빈필신년음악회 중에서..... / Carlos Kleiber & Wien Philharmonic

Strauss II - Die Fledermaus Overture (오페레타 박쥐 서곡) 

 

Strauss II- Voices of Spring Op.410  

 

Strauss II- On the beautiful blue Danube Op.314

 

Strauss I - Radetzky March Op.228 / Carlos Kleiber & Wien Philharmonic 89  

 

 

2004년 7월 타계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우리에겐 낯설고 생소하지만 음악계에선 카라얀 이상으로 평가받는 지휘자다. 그가 죽자 음악계는 거장 지휘자의 세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평했다.
클라이버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건 카라얀과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상업적이고 미디어 지향적, 대중 지향적이었다. 돈이 되면 지휘봉 들고 흔드는 것쯤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클라이버는 달랐다. 세상이나 자기 PR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록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기록이라는 명언처럼, 음반을 낸 적도 드물다.
카라얀이 비정하리만큼 차갑다면 클라이버는 가족을 위해서는 지휘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다. 단원을 이끄는 방식도 독재적인 카라얀에 비해 클라이버는 민주적이고 예의가 넘쳤다. 그와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은 평생에 만난 최고 지휘자로 평가했고 그의 음악을 들어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이버는 어느 누구보다 리허설을 많이 했다. 악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은 독보적이었고 음악에 대한 열정, 지식, 경험의 삼위일체에 모두 감탄한다.

 

Carlos Kleiber 1930.7.3~2004.7.13

클라이버는 1930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이었던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치에 반대해 고국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그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교육을 받은 뒤 24세 때 지휘자로 데뷔했다. 50, 60년대 취리히 오페라극장,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극장 등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오페라 지휘자 겸 콘서트 지휘자로 명성을 쌓았고 국적도 오스트리아로 다시 바꿨다.
70년대 이후 자유계약 지휘자로 세계 각지를 돌며 지휘대에 섰던 그는 개성 넘치는 작품해석과 함께 일체의 인터뷰를 사절하는 등 은둔적인 풍모로도 유명했다. 악단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도 실제 연주에서는 활화산과 같은 열기를 이끌어냈던 그는 바이에른 국립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4번(오르페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한 베버 오페라 ‘마탄의 사수’(DG) 등의 명반을 남겼다.
슬로베니아 언론들은 그가 17일 슬로베니아의 코니시카에 있는 부인의 묘 옆에 묻혔다고 보도했다.(동아일보)
--최후의 마에스트로(거장)가 갔다.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74)가 최근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난 6일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숙환으로 별세, 슬로베니아 출신 아내의 묘지 옆에 10일 안장됐다고 연합뉴스가 20일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의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클라이버는 유려하고 다이내믹한 ‘초서체(草書體) 지휘’로 음악팬을 사로잡았지만, 어느 오케스트라에도 ‘음악감독’이나 ‘상임’으로 얽매이지 않은 음악적 자유인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등 특급 악단의 러브콜도 “한 군데 매이기 싫다”며 한사코 뿌리쳤다. 36세부터 2년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을 맡은 게 음악감독 경력의 전부다.
그는 까다로운 성품이어서 걸핏하면 연주와 녹음을 취소, 음반도 썩 많지 않다. 하지만 그가 까다로운 예혼을 담아낸 ‘장미의 기사’ ‘오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엘렉트라’ 등 오페라와 ‘브람스 교향곡 4번’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은 걸작으로 꼽힌다.

클라이버는 1930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유명한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 부친이 나치정권에 항거하면서 1935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수학했다.
클라이버는 1954년 독일 포츠담에서 지휘자로 데뷔, 독일·스위스·이탈리아 오페라무대서 이름을 날렸다. 뮌헨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빈 필하모닉과 즐겨 공연했다. 최근에는 뮌헨 근교 산속에서 살면서 어쩌다 아내의 나라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클라이버는 그 자신에게조차 수수께끼’라고 저서 ‘거장의 신화(The Maestro Myth)’에 적은 대로, 수수께끼처럼 클라이버는 갔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job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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