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詩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 을 패러디한 작품
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장정일 詩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 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라디오가 되고 싶다.
꽃의 패러디 / 오규원 詩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가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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