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방당한 사람처럼 거의 혼자 살아야만 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회와 섞일 수가 있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면 무서운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고 상대방이 나의 상태를 알게 될
까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시골에서 보냈다.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멀
리서 들리는 플루트 소리를 듣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때, 혹은 누군가가 목동의
노래를 들었는데 역시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때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사건들은 나를 거의 절망으로 몰고 갔으며 조금만 더 심했더라면 나는 나의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_<베토벤 불멸의 편지>
위 편지를 쓴 것은 1797년경 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비밀리에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던 무렵이다. 귀의 이상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것은 1801년의 일,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유일한
단조 조성의 작품으로, 청력 상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하다. 베토벤은
c단조 조성을 특히 좋아했다. 이 곡을 전후로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현악 4중주 Op.18-4와
같은 c단조로 된 명곡을 작곡하며, 몇 년 후에는 교향곡 5번과 서곡 <코리올란>과 같은 작품도
c단조로 내놓는다.이 곡은 구성면에서는 아직 전통적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온전히 베토벤다워서,
그 특유의 열정이 남김없이 드러나며 성숙기에 접어든 베토벤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 협주곡의
관현악은 지금까지의 협주곡 이상으로 교향곡적이며, 피아노도 지금까지의 협주곡과 비교해서
한층 세밀해지고 스케일 크게 구성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방향
을 개척하였다는 음악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