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59의 현악 4중주 3곡은 음악애호가이자 빈에 주재한 러시아 대사였던 라주모프스키(Rasumovsky)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유럽 최고의 악단으로 알려진 현악 4중주단의 제2바이올린을 맡고 있었다. 백작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베토벤은 1번의 피날레 주 주제와 2번의 3악장에 각기 다른 러시아 선율을 사용하였다. 1806년 여름과 가을에 작곡된 작품 59의 4중주곡들은 하이든의 작품 17과 20의 4중주곡들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곡들은 이 매체에서 작곡가의 특징적인 표현방식이 나타난 최초의 것들이다. 이 곡의 양식은 새로운 것이어서 음악가들에게 빨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연주자들이 F장조의 4중주곡(제1번)을 처음 연주하였을 때 그들은 베토벤이 그들에게 농담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클레멘티는 자신이 베토벤에게 "확실히 당신도 이 작품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는 않겠지요?"라고 묻자 베토벤은 평소와 다르게 자제하면서 "오, 그 곡들은 당신을 위해 쓴 것이 아니오, 후대를 위한 거요"라고 대답했다고 기록하였다. F장조의 4중주곡의 알레그레토 악장은 특히 '미친 음악'으로 분류 되었다. 음악가들이나 청중들이 베토벤의 혁신이 합리적인 것이고, 그의 악상의 성격이 전통적인 어법과 형식을 수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점을 깨닫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웅 교향곡에서 뿐만 아니라 작품 59의 4중주곡들에서도 소나타 형식은 다수의 주제들과 길고 복잡한 발전부, 제2의 발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규모와 의미를 갖는 확장된 코다 등으로 전대미문의 크기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확장과 함께 베토벤은 한 악장에서 전에는 명백했던 여러 부분들 사이의 구분선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다. 재현부는 위장되고 변화되며, 새로운 주제가 이전 재료에서부터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은밀하게 나타나고 있고, 음악적 사고의 진행은 다이내믹하고 추진력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정연하고 균형잡힌 형태를 실제로 경멸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가지고 장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베토벤의 제2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고 있으나, 그 변화는 덜 친밀한 교향곡과 서곡에서보다 4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에서 더욱 급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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