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40)은 지난달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여성 속옷을 선물받았다. 러시아어로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이 여성은 키신의 어머니에게도 구애를 했다.
키신은 "러시아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중요한데
참 영리한 여성"이라며 "아내 후보자들의 경쟁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며 웃었다.
2009년 5시간 만에 독주회를 매진시키고 올해 내한 공연도
완판시킨 그는 `귀신`처럼 청중을 홀린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그의 일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연습에만 매여 있고 열애설도 거의 없다.
연간 70여 회 음악회 무대에서만 볼 수 있고 사생활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 공연이 끝난 후 바쁘게 돌아간 그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신청했더니 곧장 답장이 돌아왔다.
그는 "한국 팬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이다"며
"아마 이탈리아 청중 정도가 한국과 비슷할 것"이라고 한국 공연의 여운을 되살렸다.
그도 한국 팬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내한 공연에서 인터넷 팬클럽 회원들을 분장실로 불러들여
기념촬영을 해줬다.
2009년 독주회에서는 한국 팬들을 위해
무려 10곡의 앙코르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지난달 연주회에서도 피아노 협연자인데도 불구하고 앙코르곡 2곡을 연주했다.
한국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그는 국내 연주자들과도 인연이 깊다.
"정명훈 지휘자와 여러 차례 협연을 했고 그 음악회를 매우 즐겼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국계 러시아 트럼펫 연주자 바실리 칸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그는 한국 방문 때 먹은 불고기도 떠올렸다.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그 지역 음식을 먹어보는데,
한국에서는 불고기를 먹어봤습니다. 김치는 너무 매워 엄두가 안 났죠."
그의 삶에는 김치처럼 자극적인 게 별로 없다.
말수도 적고 늘 피아노 주위에서 담백하고 검소하게 산다.
연습할 때는 햄ㆍ치즈와 야채 샌드위치, 감자튀김으로 식사를 때운다.
열량이 많은 햄버거는 자제한다.
취미라고는 책을 보고 연극을 감상하는 게 전부다.
최근 홍콩대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은 키신은
"최근에는 자크 멀리오가 쓴 `유고슬라비아의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를 읽었다"고 밝혔다.
프랑스 언론인이 쓴 이 책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세르비아계와 타 민족 간의 전쟁의 이면을 파헤친 책이다.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옛 소련 해체를 경험한 그는
"10대부터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책을 보지 않을 때는 피아노 앞에 앉는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하루 7시간 이상 연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 연주한다.
정작 그는 "매일 7시간 연습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공연 당일에는 에너지를 아껴두기 위해
절대로 지나치게 연습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하루 7시간 이상 연주할 때가 많다고 한다.
어떤 좌우명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음악에 몰입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생각을 깊이 하고 말을 내뱉는 습관을 가진 그는
"내 인생에 좌우명은 없다"며 "목표가 있다면 내 잠재력을 깨닫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휘자나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피아노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내 인생이다"고 짧게 답했다.
50여 개 음반을 발표한 그의 다음 앨범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텔아비브에서 거장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실황 녹음했다.
이 곡은 지난달 내한 공연에서 연주했던 작품이다.
1984년 불과 13세에 모스크바 무대에서 연주해 천재 피아니스트로 각인된 곡이기도 하다.
그는 생후 11개월에 누나가 연주하는 바흐의 음악을 되풀이해서 웅얼거렸다고 한다.
6세에 러시아 지네신 음악원에서 스승인 안나 칸토르를 만났다.
"칸토르는 내 인생의 유일한 스승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사이는 더 가까워지고 있죠.
20년 전에 그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이사했고,
지금도 우리는 한 가족처럼 지냅니다."
스승을 극진히 모시는 그는 효자이기도 하다.
연주 여행에 어머니를 꼭 동반한다.
언제 데이트를 할까 의아할 정도로 늘 어머니가 곁에 있다.
3년 후 공연 일정까지 잡혀 있는 키신은 2014년 4월
독주회로 다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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