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ethoven of all the quartets Budapest String Quartet(1916 ~1967)
(First appeared at Classical Forum of Freechal)
1. History of this quartet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가 말했다고 한다. "러시아인 한 명은 무정부주의자다. 두 명이 모이면 체스(chess)를 두고, 세 명이 모이면 혁명을 일으킨다. 네 명이 모이면 부다페스트 4중주단이다." 이들이 현악 4중주단의 역사를 바꾼 점에서는, 여러 면에서 베토벤이 작곡가의 위치를 바꾼 점에 비길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이 가장 정평을 얻은 레파토리가 베토벤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비유는 그리 허황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4중주단은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단원 넷이 1916년 결성했다(1918년이라는 설도 있다). 창립 멤버는 제 1 바이올린에 에밀 하우저(Emil Hauser), 2 바이올린 알프레드 인디그(Alfred Indig), 비올라 이스트반 이폴리(Istvan Ipolyi), 첼로에 네덜란드인 해리 손(Harry Son)으로 나머지는 전원 헝가리인이었다. 그러다가 1927년 제 2 바이올린에 조셉 로이스만(Joseph Roisman)이 들어오면서 소위 '러시아인의 침공'이 시작된다. 1930년 손 대신 미샤 슈나이더(Mischa Schneider)가 들어왔다. 특히 큰 변화는 1932년에 있었는데, 하우저가 떠나면서 로이스만이 리더를 대신했고, 미샤의 추천으로 그의 동생 알렉산더(Alexander)가 들어온 일이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러시아인으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1936년 이폴리 대신 로이스만의 추천으로 보리스 크로이트(Boris Kroyt)가 들어오면서 러시아인의 침공은 끝났다. (미국에서까지 있었던 자세한 멤버의 변동에 대해서는 곧 페이지를 만들 계획이다.)
◀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초기 멤버들. 맨 왼편에 이폴리, 가운데 로이스만, 가운데 아래에 하우저, 오른쪽에 첼리스트 손(Biddulph LAB 159)
부다페스트 4중주단은 유럽에 전운(戰雲)이 짙어지자 193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워싱턴 국회 도서관의 상설 4중주단이 되고 Columbia와 전속 계약을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곧 이들의 명성은 '거의 달나라까지 치솟았다'고 말할 정도로 높아졌다. 그 덕인지,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들은 4중주 활동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으며, 출연 요구가 너무 많아져서 쉴 사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나머지 세 사람과는 달리, 20세기의 가장 정력적인 음악가 중 하나인 알렉산더 슈나이더는 솔로 활동을 4중주단의 활동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계속했다. 그는 카잘스의 프라드 페스티벌(Prades Festival)의 산파가 되었을 뿐 아니라, 후에 푸에르토리코의 음악제와 제르킨 일가의 말버러 페스티벌(Marlboro Festival)에도 바이올린 솔로 및 지휘의 단골 멤버였다. 그는 1944년 부다페스트를 떠났다가, 젊은 작 고로데츠키(Jac Gorodetzky)의 병으로(결국 1955년 그는 이 병으로 사?! 좡杉?) 급히 4중주단에 복귀한 이후, 마지막 연주회 때까지 활동했다. 1967년 2월의 마지막 연주회 후, 로이스만이 은퇴하고 크로이트가 사망하여 이 전설적인 4중주단의 활동은 종막을 고한다.
2. Their art & recordings
이 4중주단이 한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연주 외적인 면부터 보면 우선 '전업 4중주단'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현악 4중주단의 역사에서 베토벤에 비길 수 있다. 이들 이전까지는 어떤 4중주단도 4중주 활동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다고 한다. 4중주 활동을 하면서도, 생계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거나 솔리스트 또는 교수 활동으로 유지하는 식이다. 실내악을 그렇게 좋아하는 빈 필 단원들의 실내악단도 모두 이런 형태로, 빈 콘체르트하우스 4중주단(Wiener Konzerthaus quartet)이나 바릴리 4중주단 등이 이런 대표적인 경우다(스메타나 4중주단도 원래 체코 필의 4중주단이었으나 오케스트라 활동을 면제받았다). 이들은 4중주를 전업으로 하면서도 성공할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요즘의 유력한 4중주단은 거의 모두 이들과 같은 '독립형'이고, 오히려 교수나 오케스트라 활동 쪽이 부수적인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연주 스타일인데, 요즘은 네 멤버가 동등한 관계에서 연주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어서 오래된 녹음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는 현 4중주의 스타일이 이렇지 않았음을 놓치기 쉽다. 소위 '민주형' 4중주단을 만든 것은 거의 이들의 공로로 돌릴 수 있다. 카페(Capet) 4중주단이나 빈 콘체르트하우스 4중주단의 녹음을 들어 보면, 제 1 바이올린이 전체를 인도함이 너무 명백하다. 부시 4중주단은 카페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리더 아돌프 부시의 스타일이 전체를 지배함은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프로 아르테 4중주단(Pro Arte quartet)이 좀 더 민주형이었는데, 당시에 이런 형태는 매우 드물었다. 1940년대에 바릴리 4중주단이나 스메타나/야나체크 등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런 '약간 더 민주적'인 4중주단마저 그리 많지 않았다.
▶ 모노랄 시기, 고로데츠키가 참가한 모차르트의 '하이든 세트' 녹음
반면, 부다페스트 4중주단은 유럽 시대에 로이스만이 리더가 되면서 이미 완벽한 민주형으로 바뀌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말은 이렇다. "에밀이 떠나는 바람에 저는 제 1 바이올린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머지 세 멤버들이 다 나만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했습니다. 프레이징, 운궁 등을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으며, 2대 2로 엇갈릴 경우에는 타협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순전히 로이스만의 개인 성향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도 이 결정이 이렇게 영향이 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에서 성공하고 난 후는 크로이트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거의 모든 4중주단은 우리의 스타일을 따라왔다". 지금은 이들의 영향은 토스카니니에 비길 만 할 정도다. 현재 '민주형' 아닌 4중주단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녹음은 로이스만이 리더가 되고 소위 '러시아인의 침공'이 있은 뒤인 1930년대 이후이며, 창립자인 에밀 하우저가 아직 리더로 있던 1920년대 말기의 녹음은 매우 드물다. 전기 녹음 시대 이후의 것만 따지면, 가장 이른 시기의 녹음은 HMV에 녹음하기 시작한 일련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작품들이다(이미 로이스만이 리더이던 때의 녹음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레이블(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외에는 현재 CD로 구하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베토벤 현악 4중주곡 13번과 대 푸가(EMI)를 EMI References LP로 볼 수 있었으나 이나마 절대로 흔하지 않다. 현재 Sony Classical 본사에서는 스테레오 녹음들을 잘 발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녹음 좋은 시기의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노랄 쪽이 오히려 구하기 쉬운 형편이다. LP로만 자그마치 총 300만 장 이상 팔렸다는 아티스트 치고는 아무래도 좀 푸대접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다페스트 4중주단이 가장 자랑하는 레파토리는 베토벤이다. 이들은 베토벤 전곡을 78회전 시대에 유럽에서 HMV, 그 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Columbia에 나눠 거의 완료했고(5번만 미완성), 51~53년의 모노랄 시대와 58~61년의 스테레오 시대에 Columbia에 완성했다. 전곡 세 번이라는 이 기록은 아직 어느 단체에서도 깨지 못했다. 미국 초창기의 녹음은 Sony Masterworks Heritage 시리즈에서 CD 4장으로 정리해 내놓았으며, 모노랄 녹음은 초기 6곡만이 Masterworks Portrait 시리즈의 더블 CD로 나왔다(라이선스 LP로 전곡이 오래 전에 나왔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원숙기의 스테레오 녹음은 지구레코드 라이선스 LP로 후기 작품, SKC 라이선스 CD로 전곡이 나온 후 폐반되고 나서는 본사 Essential 시리즈로 7~10번과 대 푸가의 2장만 볼 수 있어 아쉽다. 일제로 전곡이 두 번 수입된 일이 있지만, 요즘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